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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뉴스뉴스데스크

80년 5월, 광주MBC는 왜 잿더미가 됐나

(앵커)
5.18 42주년 연속 기획보도,
<미완의 오월 수첩> 네 번째 순서입니다.

42년 전 5월 20일은
광주MBC가 불탔던 날입니다.

5.18 민주화운동 소식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자
이에 화난 시민들이
광주MBC 사옥에 불을 낸 건데요.

광주MBC가 어떤 방송을 했던 건지
이다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1980년 5월 20일 밤 9시 반쯤.

광주MBC가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볼펜 한 자루 남지 않고
모두 잿더미가 됐습니다.

* 박보융 / 5.18 당시 광주MBC 편성제작 책임자
"4층, 5층 옥상 위로까지 쫙 불기둥이 올라가서 그대로 다 전소되는 거예요.
그 현장을 목격한 나는 피눈물 났죠."

시민들은 광주MBC가 5.18 민주화운동을
축소, 왜곡 보도한 것에 화가 나 불을 질렀습니다.

전날 80년 5월 19일 밤 10시 36분,
계엄당국의 요구에 따라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자막을 내보낸 게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사실과 명백히 다른, 허위 보도였습니다.

* 이문석 /5.18 당시 광주MBC 라디오PD
"유언비어에 속지 마십시오. 단 1명의 사망자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눈 앞에 수없이 죽어간 학생 시민을 목격한 시민들은
방송국에 빗발치는 항의 전화를 걸어오고 분노를 터뜨렸다."

문제의 자막이 나간 이튿날
사실 보도를 요구하는 시위대가
이곳에 있던 광주MBC 앞으로 몰려왔습니다.

급기야 건물 안으로 화염병이 날아들며
불이 났습니다. 

넉달쯤 뒤 시민 2명이 방화 혐의로 붙잡혀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실제 방화를 한 사람이 맞는지,
계엄군 편의대가 방화를 유도했다는 소수설이
설득력이 있는지는 아직 조사 중입니다.

* 이관형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3과장
"이 두 사람이 과연 진짜로 MBC 방화를 한 것인지,
아니면 이 사건이 두 사람의 방화라고 당시 공안당국이
조작을 하였는지 여부까지 저희가 조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광주MBC 화재는
열흘 간의 5.18 민주화운동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무력을 동원해가며 언론을 좌우하고
결국엔 국민의 눈을 가리려 한 신군부의 만행.

* 서공석 / 5.18 당시 광주MBC 보도국 기자
"내가 데스크인데 데스크 옆자리에 앉아서 권총 놔두고.
기사를 자기가 고치기까지 했어요."

압력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사실 보도 원칙을 저버려
시민에 응징당한 언론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 이문석 / 5.18 당시 광주MBC 라디오PD
"우리가 이분들이 있어서 행복하고 이분들이 있어서 불행한 거란 말이야.
우리는 프로니까. 시청자들 손에 의해서 회사가 불탔다고 하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로서는 죄인이거든."

앞으로도 언론이 잊어선 안 될 가치 역시 상기시킵니다.

* 서공석 /5.18 당시 광주MBC 보도국 기자
"권력과 싸우지 않고는 안 된다. 언론 자유가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거든요."

광주MBC 궁동 사옥은 권력의 언론 탄압과 저항,
왜곡 보도와 시민 분노의 상징적 공간으로 남았습니다.

MBC뉴스 이다현입니다.


이다현
광주MBC 취재기자
시사보도본부 뉴스팀 사회*교육 담당

"안녕하세요. 이다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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