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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뉴스데스크

"우리 아들 유해만이라도"... 애끓는 5.18 유족들

(앵커)
42년이 흘렀어도 가족들의 아픔은 그대롭니다.

40여 년만에 가족을 찾은 유족도,
아직 가족을 기다리는 유족도
애절한 슬픔은 1980년 그날에 멈춰있습니다.

임지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국립 5.18 민주묘지 1-38번 '양창근의 묘'

이 묘지엔 행방불명된줄 알았던 김광복 씨가 묻혀 있었고,
양창근 씨의 유해는 무명열사묘에 안장돼 있었습니다.

42년 동안 엇갈린 운명에 놓였던 두 열사의 가족이 만났습니다.

* 양중근/ 양창근의 형
"참, 저도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사십몇 년간 어떻게 사셨어요"

매년 5월이면 찾았던 민주묘지지만
지척에 피붙이를 두고도 알 수 없었던 두 유가족이
하나의 묘에 함께 인사를 올립니다.

형제의 정을 느낀 두 사람은 지난 세월 당신이 느낀 아픔만큼
상대의 아픔을 먼저 걱정합니다.

* 김사익 / 김광복 씨 형
"너무 아이러니하게 여기 있는 거예요. 제사를 양창근 열사님 형님분이
오늘처럼 이렇게 계속 지내주시고 저는 너무 감사한 일이에요."

김광복 씨가 가족을 찾았지만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은 행방불명자는 76명.

42년째 가족의 유해도 찾지 못한 가족들의 억장은 무너집니다.

1980년 5월 사라진 뒤 돌아오지 못한
7살 이창현 군의 어머니는
아들이 좋아했을 케이크과 음료를 봉분 없는 묘에 올립니다.

* 김말임 / 이창현 씨 어머니
"헌병이 되든지 누가 됐든지 간에 우리 아이가 어떤 모양에서 어떻게 됐는지
그 사람들 한 번만 만나봤으면 원이 없겠어요"

학살 책임자들의 침묵 속에서
유족들은 완전한 진실 규명을 외치고 있습니다.

* 구선악 / 오월 어머니
"우리 아들 붙잡고 실컷 울었거든. 한번씩 울고나면 나는 여기 마음 끝이 아파서...
우리 바람이란 게 증인이 나와서 솔직하게 이렇게 했다고 하는 그 바람."

4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가족들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채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MBC 뉴스 임지은입니다.
임지은
광주MBC 취재기자
시사보도본부 뉴스팀 사회*시민 담당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주목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