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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뉴스투데이

71년이 지났지만.. 암흑 속 이야포 폭격사건

(앵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민간인들이
희생된 대표적인 사건이 '노근리 사건'이죠.
당시 여수시 안도 이야포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었는데요.

하지만 특별법이 제정돼 진상조사가 이뤄진
노근리 사건과 다르게, 여수 이야포 사건은
71년이 지난 지금도 정확한 사건 경위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조희원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올해 87살이 된 이춘혁 씨.

이 씨는 71년 전, 그 끔찍했던 날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합니다.

부산에서 출발한 피난선이
여수시 남면 안도리 이야포 포구에
잠시 정박해 있을 때였습니다.

미군 폭격기 4대가 날아와
갑자기 무차별 폭격을 시작했고,
이 씨의 부모님과 동생 두 명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 이춘혁 / 이야포 사건 생존자(당시 16세)
"한 번 폭격하고 갔다가 조금 있다가 또 와서 폭격했어요.
그 바람에 (배에 탄) 사람들이, 350명 중에서 150명이 희생됐습니다."

정부는 살아남은 피난민들을
모두 배에 태워 다시 거제도로 보냈고,
시신과 피난선은 불태워버렸습니다.

지난 2010년, 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당시 미군의 폭격이 불법적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하지만 사건과 관련된 문서가 부족해
가해 주체를 특정하지 못했고,
이미 공소시효도 끝난 지 오래돼
유족들은 아무런 배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여수시는 지난 6월
위령 사업을 위한 조례를 제정해
추모 시설과 공간을 만들고,
다시 진실규명을 위한 활동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 이춘혁 / 이야포 사건 생존자 (당시 16세)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우리는 타지사람이거든. 따지고 보면. 부산사람인데...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지만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희생자의 직계 가족들은 대부분 숨졌고,
남아 있는 자료도 많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본격 활동을 시작한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조사할 사건에도,
이야포 미군 폭격사건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 엄길수 / 이야포 위령사업 추진위원장
"이것은 국가의 폭력인데, 억울하게 죽은 국민에 대한 한을 좀 풀어줘야 한다.
우리 정부는 미국에 책임을 좀 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야포 포구의 바다 밑에는 지금도
71년 전 희생자들의 아픔을 간직한 피난선이
잠들어 있습니다.

MBC NEWS 조희원입니다.

조희원
여수MBC 취재기자
고흥군ㆍ여수경찰
"꼼꼼히 취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