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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뉴스뉴스데스크

민주주의 구심점 '망월동 구묘역'

(앵커)
광주항쟁은 대한민국 곳곳,
사회 구석구석에 영향을 끼쳤고
힘들고 소외받은 이들을 위해 손을 내밀어오며서
한국 민주주의의 등대와 같은 존재로 자리잡았습니다.

바로 그 연대의 힘이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MBC는 5.18 43주년을 맞아
광주, 그 위대한 연대의 연속기획보도를 마련했습니다.

광주가 내밀었던 손길의 의미를 송정근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저는 지금 광주 북구 산정동 산 45번지,
망월동 구묘역이라고 부르는 곳에 와 있습니다.

이곳에는 민족 민주 열사 54분이 묻혀 있는데요.

이 가운데는 지역 연고가 없는 분도 있습니다.

왜 수많은 민족 민주 열사들이
망월동 구 묘역에 묻혀 있는 걸까요?

망월동 구묘역은 80년 5월 당시
신군부가 희생자들의 주검을
처리하려고 조성한 공간이었습니다.

구 도청 앞 상무관에 있던 1백구 넘었던 시신들이
청소차에 실려 이곳으로 왔습니다.

전두환 신군부는 이 공간을 견디지 못해 했고,
감시와 탄압으로 구묘역은
유족들도 제사상을 차리기조차 힘든
금단의 땅이 되었습니다.

급기야 희생자 일부를
다른 곳으로 이장시키려고 했고,
5월이 다가오면 부모형제들을 강제로
차에 싣고 전국 각지에 분산시키기도 했습니다.

* 김범태 /국립 5.18민주묘지 관리소장(5.18 당시 시민 협상 대표)
"신군부는 5.18 당시 함께했던 사람들이 혹은 유가족들이
모이는 것을 굉장히 금기시했습니다. 특히 5월 18일 날
이런 행사를 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초미의 관심을 갖고
그 사람들이 경계를 하고 그랬었습니다."

계엄군에 저항했던 광주시민들의 모습은
군사정권에 항거했던
8,90년대 학생들과 민주 인사들에게 빚으로 남게 됐고
이후 구묘역은 이들의 주요 참배코스가 됐습니다.

광주를 넘어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 공간으로 거듭난 겁니다.

이한열 열사, 강경대 열사, 백남기 농민 등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기를
소망했던 열사들이
망월동 묘역에 묻힌 이유입니다.

* 박구용/전남대 철학과 교수
"대한민국 현대사의 극적인 사건이 5.18이고 그것을
상징적으로 품고 있는 것이 5.18 구묘역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정의와 연대를 함께 균형을 지향하는
대부분의 사회 운동, 사회적인 어떤 피해자들이 함께하는"

국가폭력에 저항했던 광주시민들의 희생 위에
보다 나은 민주화된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를
희망한 민족민주열사.

죽은 자들의 무덤을 찾아와 고개를 숙이는 산 자들.

5.18이 지난지 40년이 넘은 현재에도
망월동 구묘역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구심점으로써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광주MBC는 앞으로
노동과 학생, 사회적 참사 등
광주가 손을 내밀고 함께 손을 잡았던
다양한 연대 이야기를
5.18 기간동안 보도할 예정입니다.

MBC뉴스 송정근입니다.
송정근
광주MBC 취재기자
시사보도본부 뉴스팀 사회*시민 담당 주말뉴스데스크 앵커

"당신의 목소리를 먼저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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