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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뉴스데스크

72년 지났는데...미군 폭격 여수 '이야포'의 비극

(앵커)
이야포 사건, 처음 들어보시는 분들 많으실텐데요.

여수에는 이야포라는 작은 섬이 있는데
한국전쟁 당시 이 곳에서는
미군의 폭격으로 민간인 희생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일명 '노근리 사건'과 비슷한 일이었지만
72년이 지난 지금도
정확한 사건 경위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보도에 김단비 기자입니다.

(기자)
여수에 있는 작은 섬, 이야포.

한국전쟁이 한창인 1950년 8월 3일,
피난민 2백여 명을 태운 배는
제주도로 가기 전, 잠시 이곳에 정박했습니다.

당시 16살이던 이춘혁 씨는
부모님과 4남매가 함께 이 배에 올랐다
미군으로부터 끔찍한 일을 당했습니다.

이야포 해변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이춘혁/생존자 당시 16살
“미군이 저하고 눈도 마주쳤어요.
돌아오자 저리 가니까 비행기가 와서 배에다 총을 쐈습니다.
무조건 총을 쏘니까 배안에 전부 아우성이죠.
총 맞아서 돌아가신 분들도 있고 피가 흐르고...”

이야포 폭격이 있고 엿새 뒤,
여수 두룩여 해상에서도 비슷한 폭격이 이어졌습니다.

조기잡이 어선 백여 척이 미군의 공중 공격을 받은 건데,
김유광 씨의 아버지도 그때 총상을 입었습니다.

*김유광/유족
”전날 조기가 많이 나서 낚시질을 뒷날 따라갔는데
그날 미군 폭격기가 와서 폭격을 한 거죠, 두룩여에서.
낚시배들이 잔잔한 바다에 배들이 많이 떠있는데
배들을 향해서 폭격기가 폭격을 한 거에요.“

이야포 해변에서 폭격으로 희생된 피난민들은 150여 명,
두룩여에서는 10여 명이 희생됐습니다.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는
당시 미군의 폭격이 불법이었다는 걸 밝혀냈지만
왜 작은 섬이 공격을 받았는지,
정확한 피해 규모는 얼마인지는
아직도 물음표로 남아 있습니다.

생존자 대부분이 사망한데다
사건과 관련된 자료가 적고
무엇보다 공소시효가 지나 배상도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이렇다보니 지역 사회에서는
정확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여수시는 여순사건처럼
범국가적인 차원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기명/여수시장
“하지만 아직까지 국가차원에서 사과와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2기 진실위원회가 금년 12월 9일까지
피해자와 유족, 목격자로부터
진실규명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72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수면 아래 있는 여수 이야포, 두룩여 사건.

몇 남지 않은 생존자와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도 모자라
이대로 역사 속에 잊혀질까 두려움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MBC뉴스 김단비입니다.

김단비
여수MBC 취재기자
여수경찰 여수해경

"어디든 달려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