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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잊혀져가는 6월항쟁

(앵커)
오늘은 6월 항쟁 28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한국 민주화운동에 큰 획을 그은
역사적인 날이지만
이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이들은
전보다 크게 줄었습니다.

김철원 기자입니다.

(기자)

1987년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이 한 장의 사진.

28년 전 6월 9일, 이한열 열사는 전두환정권에 맞서는 시위에 나섰다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았습니다.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졌고 마침내 전두환 독재정권은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요구를 받아들이면서 항복했습니다.

5.18 때 시작한 한국 민주화운동이 하나의 큰 매듭을 짓는 순간이었습니다.

(인터뷰)유시민/'기억하는 자의 광주' 대표 저자
"1980년 5.18 이후에 1987년 6월 항쟁 때까지 7년간 당시 민주화운동을 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을 지배했던 생각이 광주의 전국화, 5.18의 전국화, 10개 20개의 광주는 진압 못한다. 저 쪽에서..."

화순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중고교를 다닌 21살 대학생 이한열 열사의 장례는 광주시민들의 큰 관심 속에 치러졌습니다.

(인터뷰)이명자/5월 어머니집 관장(당시 민가협광주지회장)
"엄청 모이고 비껴가지 못할 정도로 앉아 있기도 하고 저희가 또 망월동에 갔을 때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따라오셔가지고 굉장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6월 항쟁도 이제 오래된 기억이 되고 있습니다.

87년 6월을 기억하는 기념행사는 초라하고 망월동에 안장된 민족민주열사를 찾는 참배객도 찾기 힘듭니다.

(인터뷰)배은심 씨/이한열 열사 어머니
"말을 안해서 그렇지 (시민들이 6월항쟁의 의미를) 다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네요."

광주전남 6월항쟁기념사업회는 6월 항쟁의 뿌리는 5.18이었고, 6월항쟁의 시작지도 광주였다며 광주시가 기념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스탠드업)
광주전남 6월항쟁기념사업회는 광주가 6월항쟁의 진원지임을 적극적으로 알려나감과 동시에 2년 뒤로 다가온 30주년 기념행사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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