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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일기2 윤상원,"전태일이 나를 이끌었다

(앵커)

윤상원, 전태일 두 열사의
삶을 재조명하는
광주MBC 5.18 특집 다큐
'두개의 일기'를
미리 보는 순서입니다.

오늘은 그 두번째로
둘만의 특별한 관계를 알아봅니다.

두 열사는
생전에 한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시대를 이끈 양심이라는 점에서
시공을 넘어 연결돼 있습니다.

김철원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전남대 정외과 71학번인 윤상원은 원래 출세가 인생의 목표였습니다.

외무고시에 합격해 고위관료가 되고자 했습니다.

(인터뷰)김상윤/윤상원기념사업회 이사장
"(상원이가) 외무고시 준비하면서 요즘 골프치는 것처럼, 그 때는 조금 고급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테니스 했어요"

하지만 빈민들 속으로 들어가 노동운동을 하는 쪽으로 그의 인생은 항로가 바뀌었습니다.

서울서 내려와 야학활동에 투신했고 위장취업을했습니다.

(녹취)윤상원 일기(78.11.9 목)/ "기계는 돌아간다. 사람이 돌아간다. 싸구려로 막 돌아간다. 긴 굴뚝의 연기 속에 우리의 피와 땀은 용해되어 날아가는데, 그래도 백억 불이다 천 불이다, 잘 사는 세상이다."

무언가 계기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건 바로 윤상원이 재수생 신분이던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에서 일어난 전태일의 분신사건이었습니다.

(인터뷰)이태복 전 보건복지부장관/
"(전태일의 분신이) 노동쪽으로 돌아와서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해준 결정적 계기다 (윤상원이 내게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하루 15시간씩 먼지구덩이에서 일하는 평화시장의 소녀 여공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전태일의 결단이 윤상원을 깨운 겁니다.

(녹취)전태일 일기(1970.3.17)
"무성의하게 방치된 어린 동심을 하루 한시라도 빨리 구출하는 데 그 취지가 있다. 나는 이 사업을 위하여 보잘 것 없는, 물질적으로 본다면 1달러의 값도 없는 나의 전부를 여기에 바칠 것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전남도청에서 물러서지 않고 싸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습니다.

(인터뷰)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
"자기에게 부여된 역사적 책무를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비켜서지 않았다 이거야. 그래서 그러기 때문에 광주가 있는 겁니다."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난 전태일과 1950년 광주에서 태어난 윤상원.

비록 생전에 서로 만나지는 않았지만 23살 전태일의 희생이 10년을 거쳐 31살 윤상원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고,

두 인물의 헌신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산 자들의 양심을 일깨우고 우리들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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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원
광주MBC 취재기자
시사보도본부 뉴스팀장

"힘있는 자에게 엄정하게 힘없는 이에게 다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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