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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뉴스투데이

최초 확인, 부산에도 5.18이 있었다

◀ANC▶
80년 5월,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광주에서만 나온 건 아닙니다.

79년 부마항쟁 이후,
신군부의 집중 타깃이 됐던
부산에서도 민주화를 외치는 많은
시민들이 있었는데요.

80년 5월 18일, 광주에서처럼
부산에서도 민주화 투쟁이 있었던 기록이
처음으로 확인됐습니다.

부산MBC 류제민 기자가 단독보도합니다.

◀VCR▶

MBC가 입수한 80년 5월 2군 상황일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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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저녁.

대학생들의 남포동 부영극장 앞 시위가
기록돼 있습니다.

다음 날인 5월 19일 저녁엔,
부산대 철학과 3학년 김영 씨가,

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유인물 200장을
살포한 사실을 기록했습니다.

부산의 80년 5월 18일, 19일 시위는
그동안 구술로만 전해졌을 뿐,
군 기록으로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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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
김 영 (80년 당시 부산대 3학년)
"보니까 제법 그 당시에 젊은 대학생이 쓸 건 다 썼다는 그런 생각이 들고, 저런 기록을 보니까 참 신기하기도 하고 또 가슴이 아프기도 하네요."

이후, 신군부의 광주학살은
부산까지 전파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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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 기록엔,
"광주 애국시민들을 학살한 자들을 처단하라"는
유인물이 시내에 뿌려졌다고 나와 있습니다.

부마항쟁 때 그랬던 것처럼
고등학생과 천주교 사제단의
시위계획도 기록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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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
김 영 (80년 당시 부산대 3학년)
"5월 19일입니다 그날이. 광주에서는 막 시위가 격화돼서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도 들리고.."

부산의 80년 5월은
'공포 속의 침묵'이었습니다.

7개월 전 부마항쟁에 대해
"초동진압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했던 신군부가

80년 초 전국적인 투쟁 열기가 고조되자
가장 먼저 '부산'을 예의주시했기 때문입니다.

영장 없는 인신구속,
마구잡이 '예비검속'으로
부산에서만 최소 70여 명이 구금됐습니다.

광주에서 26명이 예비검속된 것에 비추어보면
신군부가 부산을 집중 타격한 사실이
드러납니다

◀INT▶
김종세 / 예비검속 대상자(당시, 부산대학생)
"당시 가두시위를 조직하거나 지도할 수 있을 만한 대학생들이 대거 예비 검속으로 체포됐고, 다른 사회조직이 아직까지 가두시위를 조직할 정도로 성장하진 않았거든요."

드러나지 않고, 밝혀지지 않았을 뿐
부산의 5.18은 분명 존재했던 겁니다.

◀INT▶
김종세 (80년 5월 예비검속)
"부산은 빠지지 않고 그 저항에 참여했다. 4.19 때도 그랬고 부마항쟁 때도 그랬고 또, 5.18 때도 그렇고.. 그게 저는 부산 사람들이 가져야 할 자부심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MBC 뉴스 류제민입니다.

◀END▶
류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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