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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리포트2)일본 양심세력 움직인 지진 추모제

(앵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돕고 있는
일본의 양심적 시민들.

어제 이 시간에 보도해 드렸는데요.

이들이 아니었다면
근로정신대로 동원됐던
소녀들의 한맺힌 사연은
영원히 묻혀버렸을 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연인지,

송정근 기자가
일본 나고야에서 현지 취재했습니다.

(기자)

'슬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여기에 진실을 새긴다'

일본어로 큼지막하게 새겨진 이 비석은
1천2백명 이상이 숨진 1944년 일본 도난카이 대지진 때 미쓰비시중공업에서 일하다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추모비에는 일본인들 뿐 아니라
오길애, 김순례, 등 한국인 이름도 보입니다.

1944년 근로정신대로 끌려와 일하다 숨진 한국인 소녀 6명입니다.

(인터뷰)무라마스 히사토/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일했던 일본인
"굉장히 쓸쓸해 보였습니다. 그녀들은 조선반도에서 강제 동원돼서 명령에 의해서 열심히 일을 했고, 휴게 시간에도 일렬로 쭉 서서 말없이 서 있었습니다."

식민지의 열 세살, 열 네살 소녀들이 끌려와
강제노동을 한 것도 억울한데
엄마 얼굴 한 번 못보고 숨졌다는 사실은
양심적 일본인들에게 큰 슬픔으로 다가갔습니다

1988년 추모비를 세운 이들 양심적 세력들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태평양전쟁에 동원된
한국인 피해자들이 더 없는지 조사에 나섰고
마침내 양금덕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1999년 일본에서 할머니들을 대신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재판에 나섰습니다.

비록 우리의 대법원 격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하긴 했지만 할머니들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알리는 일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화면전환)

(현장음)일본 민주당 중의원 대독자/
"조선반도에서 온 여자 근로정신대 소녀 6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고 이 장소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도난카이 대지진과 일본 제국주의 전쟁을 위해 동원됐다 무참히 숨진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행사.

벌써 30년째지만 올해는 의미가 남다릅니다.

살아남아 귀국한 근로정신대 소녀들이
73년 만에 전범기업 미쓰비시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미처 다 피지 못하고 숨진 한국인 소녀들을 위해 꽃이 놓여집니다.

(현장음)다카하시 마코토/
'나고야 소송 지원회' 대표
"누가 전후 70여 년 동안 그들을 방치했는가. 그리고 추도기념비가 만들어진 이후 30년이 흘렀는데 방치하고 사죄도 하지 않은 게 누군가? 바로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중공업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됐습니다."

이들이 자국민들의 냉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인 소녀들을 위해 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다카하시 마코토/
'나고야 소송 지원회' 대표
"내 딸이 이런 똑같은 일을 당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MBC뉴스 송정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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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근
광주MBC 취재기자
시사보도본부 뉴스팀 사회*시민 담당 주말뉴스데스크 앵커

"당신의 목소리를 먼저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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