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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

50년 숨죽인 세월..여수 납북어부의 한맺힌 '눈물'

(앵커)
조업 도중 북한에 납치됐다가 풀려났지만,
남한으로 돌아온 이후 오히려 간첩으로 몰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북한과 인접한 강원지역 뿐만 아니라
어민이 많았던 전남지역에서도
억울함을 풀지 못한 납북 어부들이 있습니다.

한 납북귀환 어부 사연을
강서영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1971년 5월 19일.

이제는 백발이 성성해진 83살 신평옥씨가
납북되던 50년 전 그 날의 기억을 더듬어봅니다.

여수선적 동림호의 선장이었던 신씨는
선원들과 서해 연평도 인근에서 조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안개가 자욱하고 유독 조기가 많이 잡히던 그날,
북한 경비정이 동림호에 접근했고,
신씨와 선원들은 그대로 북한에 끌려갔습니다.

*신평옥 / 납북 귀환 어부
"그 연평도 안개란 게 무섭습니다. 옆에 사람 지나
가도 몰라요. 그런게 그 배(북한 경비정)가 어디서
왔는지도 몰라 배 대서 보니까 빨간 모자(쓰고..)
우리가 잡혀가고 있는데 (북한 군인들에게)뭐라고
할 겁니까. 지금 다 죽게 생겼는데 "

신씨와 선원들은 1년여 후 남한으로 귀환했지만
곧바로 어디론가 끌려가 조사를 받았습니다.

신씨는 당시의 고통스런 기억을 조심스레 털어놨습니다.

*신평옥 / 납북 귀환 어부
"(북한에서) 지령 뭐 받았냐 그거예요. 그런데 이제
저 같은 경우는 아무것도 없어요.
잠을 못 자게 만들어요. 여기(다리)요 여기다가요.
막대기도 해 놓고요. 우겨서 눌러.. 어깨 누르고
이거 발로 올라타 보시오. "

신씨의 고향인 여수 적금리에 딸린 작은 섬 '소당도'.

고문을 견디다 못해 신씨가
소당도에서 북한과 접선하기로 했다고 거짓말을 하니,
그제서야 고문이 멈췄다고 말합니다.

*신평옥 / 납북 귀환 어부
"그러고 나니까 이제 안 때려요. '진작 네가 그런 말 했으면
네가 안 맞을거 아니냐' 그거예요. 근데 거짓말이지."

조사 끝에 재판에 넘겨진 신씨는
1973년, 대법원에서 간첩 혐의와 월북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억울했지만 당시엔 달리 손 쓸 도리가 없었다는 신씨.

츨소 이후에도 신씨와 가족들은 주변으로부터
'빨갱이'라는 오해와 차별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신평옥 / 납북 귀환 어부
"고기를 삶고 있는데 (정보경찰이 찾아와서) 왜 전향하라는데
안하냐 이거예요.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오..."

현재는 폐허가 돼버렸지만,
당시 신씨가 지목했던 소당도 인근에는
방위군이 보초를 서는 초소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신평옥 / 납북 귀환 어부
"지령을 받아왔다고 해서 (초소가) 생긴거죠.
나 그렇게 생각해요. 나 때문에."

차별과 편견 속에 지난 50년을 숨죽여 살았지만,
이젠 진실을 말하고 억울한 누명을 벗고 싶다는 신평옥씨.

신씨는 1심 선고를 내린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
조만간 재심을 청구할 예정입니다.

MBC뉴스 강서영입니다.

강서영
여수MBC 취재기자
광주지법 순천지원 순천경찰서 고흥경찰

"MBC 뉴스 강서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