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실 짓는 어린소녀들

(앵커)
오늘날 광복의 기쁨에는 우리 선조들의 희생과 고통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해방 직전 일제는 광주에서도 방적공장을 운영하면서 군수물자를 뽑아냈는데요.

여기엔 10살 전후의 어린 소녀들이 동원됐는데
당시 사진을 입수했습니다.

광복절 집중취재, 먼저 송정근 기자입니다.


(기자)

(화면분할)***************************
앳되 보이는 조선인 여공이 머리에 일장기를
두른 채 실을 뽑고 있고..

또 다른 여공은 기계에서 실이 끊어진 곳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공장 마당에서는 무명실의 원재료인 목화를
손질하고 있습니다.

이 사진들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광주에서 운영했던 가네보 방적공장의 모습입니다.
*******************************************

이곳에 13살의 어린 나이에 강제로 끌려온
최휴임 할머니에게는 방적공장의 생활이
지옥같았습니다.

하루 12시간 이상 베짜는 곳에서 일을 했고,
일본인들에게 구타와 욕설을 들었습니다.

심지어 일본인 관리자에게 한 쪽 눈을 맞아
실명까지 당했습니다.

(인터뷰)최휴임(83살)/가네보 공장 강제동원 피해자
"무엇인가 손으로 두들겼는지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쇠뭉친가 어떻게 맞았는지..(일본 관리자에게 맞고) 죽어 넘어져버렸어.."

같은 시기 같은 공장에서 일했던
선오순 할머니도 주야로 이뤄졌던 당시의
근무를 생각하면 아직도 끔찍합니다.

(인터뷰)선오순(82살)/가네보 공장 강제동원 피해자
"어린 것이 잠 못 자고 일주일 동안 일만하니 얼마나 잠이 오겠어요..야간 일할 때에 한 군데만 틀리면 불러다가 혼나요"

1935년 광주에 세워진 가네보 방적공장에는
해방무렵 조선인 노동자가 2500명에 달했습니다

대부분 10살 전후한 소녀들로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군수물자를 생산하는데
혹사당했습니다.

(전화인터뷰)정혜경/
강제동원피해조사위 조사심의관실 조사1과장
"(가네보 방적공장은)배급, 물자 배급을 하는 배급소에 납품을 하거나 아니면 군대에 납품을 하는 형식을 취하는 군수공장이었어요."

참혹했던 공장 생활을 견디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는 여공들.

(녹취)
"떠나자 떠나자 어서 떠나자 악마같은 이 공장 어서 떠나자"

7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만큼
그날의 고통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MBC뉴스 송정근입니다.

◀ANC▶
◀END▶
광주MBC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