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5.18 44주년 연속 기획 보도, [다시, 체로키파일을 열다]입니다.
오늘은 체로키파일을 직접 작성한 미국 국무부 관료의 증언에 주목해 보고자 합니다. 이 관료는 5.18 당시 백악관에서 정책회의가 있었음을 증언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이미 알려진 회의에 더해 또다른 회의가 있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회의 내용은 7년 전 광주MBC 취재진이 당시 회의에 참석한 니콜라스 플랫 국방부 차관보의 메모를 입수한 끝에 세상에 알려졌는데요.
이 관료가 말하는 건 아직껏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또다른 회의를 말하는 겁니다.
임지은 기자가 미국 현지에서 취재했습니다.
(기자)
44년 전 5월 21일, 전남도청 앞에선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자국민을 지켜야할 군인이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해 수십명이 죽은 겁니다.
도청앞 집단발포가 일어난 지 만 이틀 만에 5월 22일 백악관에서는 정책 검토 회의, 'PRC' 미팅'이라고 이름붙여진 긴급 회의가 열렸습니다.
국무부와 국방부, 중앙정보국(CIA)과 합참, 국가안보회의(NSC) 최고위급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전두환 신군부가 광주를 진압하도록 사실상 용인한 의사 결정이 이뤄졌습니다.
광주MBC는 7년 전 다큐멘터리 '그의 이름은'을 통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미국방부 니콜라스 플랫 차관보의 메모를 확보해 보도한 바 있습니다.
* 니콜라스 플랫/ 당시 미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부차관보 (지난 2017년 5월 22일, 광주MBC 뉴스데스크)
"광주가 주요 안건이었죠.광주에서 시위가 있었고 한국 군부는 부대를 이동시키고 있었고 우리는 다시 질서를 되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회의가 열렸을 무렵, 백악관에서는 또다른 정책 검토 회의가 열렸다는 증언이 제기됐습니다.
첫번째 회의에 참석했던 국무부의 한국 과장 리치씨가 당시 광주와 관련해 열린 두번째 회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취재진에게 밝힌 겁니다.
그는 'PRC 미팅'이라고 언급하며, 회의 장소도 정확히 지목해냅니다.
* 로버트 리치 / 1980년 당시 미 국무부 한국과장
"그 기간 동안 상황실에서 두 차례의 백악관 회의가 있었습니다."
(또다른 PRC 미팅입니까?) 또 다른 PRC 미팅이었습니다"
또 다른 정책회의에 자신은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누가 이 회의를 주재했는지 어떤 의제로 회의가 열렸는지를 기억했습니다.
* 로버트 리치 / 1980년 당시 미 국무부 한국과장
"브레진스키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주재한 것을 기억합니다. 그 회의는 본질적으로 북한이 상황을 이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에 대한 논의였고, 우리가(미국이) 북한을 억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회의록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로버트 리치 / 1980년 당시 미 국무부 한국과장
"어딘가에 회의록이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회의록이) 어디 있는지는 모릅니다. 백악관에는 국가 기록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전문가는 또 다른 백악관 정책 검토 회의에선 북한에 대한 미국의 경고 방식과 진압 작전에 투입되는 부대 이동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합니다.
* 노영기 / 전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
"하나는 북한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어떤 식으로 실현할 것인지 항공모함을 이동하는 문제는 그냥 단순하게 되는 건 아닌 것 같고. (또 하나는) 진압 작전에 투입하는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논의하는 자리가 있었을 것 같고"
로버트 리치씨가 언급한 두 번째 회의에서 무슨 내용이 언급됐고 어떤 결정이 내려졌는지를 밝혀내야 하지만, 국내에서는 어떤 누구도 이런 문건은 물론 또 다른 회의의 존재 자체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에서 MBC뉴스 임지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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