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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

(인터뷰ON) '그라시재라' 전라도말 시집 펴낸 조정 시인

(앵커)
순 전라도 지역언어로 쓴 시집을 낸 '시인'이 있어 화제입니다.

화제의 인물을 만나보는 인터뷰ON 시간, 오늘은
조 정 시인을 김철원 기자가 만났습니다.

(기자)네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전라도말로 된 시집 그라시재라를 펴내셨는데요. 이런 전라도 말로 된 시집을 펴내야겠다고 생각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조 정 작가)예 제가 첫 시집을 내고 저희 부모님께서 니 시집은 수준은 높은 것 같은데,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좀 어렵더라 이야기를 두 분 다 말씀하셨어요. 제가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이게 부모님도 이해를 못하는 시만 내가 계속 써도 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인제 이 시집을 쓰게 됐습니다.

(기자)
작가님 말씀 들어보면은 거의 전라도분이신가 싶을 정도로 억양이 잘 느껴지진 않는데 전라도 영암이 고향이라고 했는데, 몇 살 때까지 사신 건가요?

(조 정 작가)제가 전라도에서 산 거는 16살 때까지 살았고요. 17살 때부터 서울에서 살았는데 사실은 이렇게 사회적인 발언을 할 때는 이제 서울말이 저한테 익숙한 거예요. 한 50년 정도 이제 서울 경계에서 살았으니까. 응 그래도 가족들하고 있으면 또 너무 자연스럽게 전라도 말이 나옵니다.

(기자)네, 그러시군요. 그런데 지금 벌써 이제 출향하신 지 출향민이 되신 지 50년 가까이 됐는데 어떻게 시집을 보면은 옛날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의 어떤 그런 전라도 말이 아주 생생한 그런 전라도 말이 이렇게 살아있는데, 그걸 어떻게 지금까지 그걸 간직하고 계셨을까?

(조 정 작가)아마 출향민인 전라도 분들은 저를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대부분 다 서울말을 하지만 마음속에는 전라도 말이 거의 뭐 살아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모든 사람은 밖으로 이렇게 소리 내는 말만 말이 아니잖아요. 자기 안에서 끊임없는 이야기들을 본인하고도 자기 자신하고도 하고, 뭐 자기 가족을 생각하면서도 하는데 아마 밖으로 발설하지 않는 말들은 아마 출향인들은 거의 다 전라도 말로 하고 있을 거예요.

(기자)네 그 시집을 보면 한국사의 여러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 동학 혁명부터 시작해서 육이오 뭐 또 여러 일제시대의 어떤 여러 사건들이 묘사가 돼 있는데,전라도 여성들의 한을 조명해야겠다라고 생각하신 이유는 뭡니까?

(조 정 작가)
우리 할머니나 어머니들은 비애는 일상을 다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고, 저는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이야기들 들으면서 그래서 그 일상 비애가 일상을 다지는 것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그것들이 노래가 되고 또 그것들이 정말 슬픔이 가득 찼지만 실제로는 울지 않는 한 어떤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정서가 돼서 정말 말대로 전라도 여성의 독특한 한 해 그 정서가 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마 책 전체가 그 굳이 한의 이야기로 보자면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고요. 그것을 떠나서는 그분들의 삶을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고.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기자)
왜 흔히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전라도 말을 출향해서 그니까 이제 출향인들이 타 지역에 가서 전라도 말을 쓰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좀 어려움을 겪었었고 또 지금도 그런다고 볼 수 있겠죠. 작가님은 어떠셨어요.

(조 정 작가)
저는 고등학교 때 그 서울을 처음 왔는데 어떤 이제 제 말에 억양이 인제 좀 있었겠죠. 아무래도 전라도 말이 섞여 있었겠죠. 그래서 한 친구가 묻는 거예요. 너는 어디서 왔니 그래서 응 광주에서 왔어 그랬더니 시골에서 왔구나 근데 전라도는 다 나쁜 사람들만 사는데 거기서 왔니 이러는데 제가 이제 그때 받은 이 충격이라는 거는 정말 잊혀지지 않는 아마 광주 5.18 소식 식을 들은 때가 이제 두 번째 충격이었고요. 그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느 지역의 사람들은 다 나쁘다라는 이런 전라도 혐오 발언을 처음 들은 거예요. 제 안에는 아주 짱짱하게 전라도 말과 전라도에 대한 자부심 어떤 경우는 오기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건 또 거기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제가 아니까 우리는 절대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아라는 이런 것들이 있었던 거 같애요. 부끄러워한 적도 없고 뭐 안 쓰려고 노력한 적도 없고 굳이 뭐 쓰려고 애쓴 적도 없고 뭐 이렇게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기자)
시집에서 가장 애정하는 사랑하는 한 대목을 한번 낭송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조 정 작가)
"우리 복자가 괴물똥 밭에 퇴깽이 새끼만치로 웅크리고 서있고 나는 오메 어째야쓰꼬 발만 동동 굴렀재. 갱찰들이 쩌리 내래가라고 총대를 내둘러서 막 돌아선디 가이내가 내 등거리에 대고 당부허드란 말이요 머시라등가 엄니 엄니 총소리 탕 나먼 나 한번만 돌아봐주소 그랍디다 글고는 열 걸음을 안 내래와서 총소리가 나는디 오메 무섭고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시상에 그라고 무서우까 사지를 벌벌 떰서 복자야 복자야 이름만 욈서 내려왔어라 뒤를 못 돌아봤단 말이오. 그것이 마지막으로 즈그 어매라고 나 거튼년을 어매라고 당부헌 말인디 못 돌아봤어라"

(기자) 마지막으로, 그라시재라는 그라시재라 이렇게 발음하면 안 되잖아요. 그라시재라 이렇게 받는 발음을 해야 제 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시집 제목을 지으신 이유는 뭡니까

(조 정 작가)
그라시재라 이렇게 하는 이게 우리 보자기 같은 것도 아닌가 왜 우기 보자기 문화 보면은 모든 걸 다 감싸잖아요. 보자기로 그런 것처럼 그라시재라 이 말이 정말 보자기 같은 풍부함을 가진 너그러운 말 전라도 말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자 )어찌 보면 전라도의 지역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공감의 언어 그래서 그라시재라라는 그 제목이 더 어울리는 것도 같습니다. 그라시재라.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김철원
광주MBC 취재기자
보도본부장

"힘있는 자에게 엄정하게 힘없는 이에게 다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