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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옥매산의 절규, 끝나지 않은 역사

양현승 기자 입력 2019-08-15 20:20:00 수정 2019-08-15 20:20:00 조회수 0

◀ANC▶
일본으로 끌려간 피해자들과 달리
국내에서 동원된 피해자들은
손해배상은 커녕
정부의 지원도 못받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백여 명이 수장됐던
해남 옥매광산 노동자들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의 사연을 양현승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END▶

◀VCR▶

해남군의 한 바닷가 선착장.

일제 강점기때 지어진 광물창고가
여전히 건재합니다.

건물 뒤편, 옥매산에서 파낸 명반석을
일본행 배에 싣기 전 거쳤던 곳입니다.

◀INT▶박철희 옥매광산희생자유족회장
"이 건물 자체는 일본이 우리나라의 광석을
착취한 수난의 역사가 담겨있는 건물이잖아요"

명반석은 군수품에 쓰이는 알루미늄의 재료.

옥매산에 대량으로 매장돼 있던
명반석 채취에 최대 천 명 이상의
조선인들이 투입됐습니다.

1945년 봄에는 제주로 끌려가
진지공사를 해야 했습니다.

해방이 된 8월, 고향으로 돌아가는
배는 몇차례 고장 끝에 화재로 침몰했고,
일본군은 구조를 외면했습니다.

배에 탄 220여 명 가운데 118명이
바다에서 숨졌습니다.

정부의 무관심 속에
74년째 진상규명은 길이 없습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피해자들조차
긴 세월 속에 생을 달리했고, 이제 90대
피해자 1명만 남았습니다.

'해외 강제 동원은 지원 대상에 속하고
국내 강제 징용은 안 된다'는 정부의
이상한 모순은 여전히 피해자 지원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INT▶박철희 옥매광산희생자유족회장
"돌아가신 분들의 명예도 회복해야 하고
사죄도 받아야 하는데 우리 유족 입장에서는
누구한테 받아야 할 지 정체성을 잃어버렸어요
한 마디로..."

(s.u)옥매광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추모시설은 지역민들이 십시일반 세운
이 조형물이 전부입니다.

피해자 후손들은 일제가 옥매산에 남긴
광물창고와 탄약고 등을 근대 문화재로
지정하고, 적어도 "잊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사유지여서 쉽지 않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억울함은 망각 속에 깊어져만 갑니다.
MBC뉴스 양현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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