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내면 집유? '형사공탁'이 감형 수단

정용욱 기자 입력 2023-09-21 08:08:59 수정 2023-09-21 08:08:59 조회수 5

(앵커)

청주의 한 아파트에서
이웃 주민을 상대로 흉기 위협을 벌인
40대가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습니다.

피해자의 엄벌 탄원에도 불구하고,
선고 직전 가해자가 법원에 냈던 공탁금이
감형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피해자는 알지도 못했던 공탁금,
지난해 말 시행된 형사공탁제도 때문입니다.

김은초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지난해 8월 청주의 한 아파트.

현관문 곳곳이 날카롭게 파였고,
여기저기 혈흔도 묻었습니다.

인터폰은 아예 뽑혀 나갔습니다.

과거 층간소음으로 갈등이 있던
위층 남성이 흉기를 들고 찾아와
돌발 행동을 한 겁니다.

*  피해자
"현관문을 걷어차고 문 열라고 하면서 손잡이 흔들고...
당장이라도 문이 열려서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무서웠고..."

피해자는 대인기피증을 비롯한
여러 정신질환이 생겨 직장을 그만뒀고,
집안에 함께 있던 아내는
안면마비 증상까지 보였습니다.

엄하게 처벌해달라고
재판부에 탄원서를 낸 것만 17차례.

그런데 1심 법원의 판결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었습니다.

초범인데다 반성하고,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한 점 등을
양형에 유리한 요소로 참작했습니다.

법원에 공탁금 7백만 원을 낸 걸
피해회복 노력으로 봤습니다.

일방적인 공탁에 대해 피해자가
거절 의사를 재판부에 피력할 수 있지만,
공탁이 선고에 임박해 대응할 수 없었습니다.

피해자는
사건 이후 가해자가 다시 달려들려 하는 등
지속적인 위협을 느꼈다며,
법원의 판단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 피해자
"가해자가 정말 엄벌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검찰과 법원에 엄벌 탄원서를 제출했는데
그게 무용지물이 된 것 같아서...
집행유예를 주셨으니까 저희는 이렇게 죽으라는 건지 참."

피해자 의사에 반해 가해자가
공탁할 수 있었던 건 지난해 말 시행된
형사공탁특례제도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피해자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등을
알아야 공탁을 신청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사건번호만 쓰면 가능해진 겁니다.

피해자 인적사항을 불법적으로 알아내는 등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법이 개정됐지만,

오히려 가해자의 감형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법 시행 이후 반 년 동안
형사공탁 신청은 60%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형사공탁이 이뤄진 사건 가운데 86%는
실제로 형량이 깎였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법조계도 이달 초 성명을 내고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 김슬아 변호사 /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년 변호사 모임 (법무법인 영민)
"(공탁금은) 찾아가지 않으면 사실 이 피해자와
아무 상관이 없는 돈이잖아요. 법원에서 피해자가
수령하지 않을 거니까 감경 사유로 삼지 않겠다고
집행유예를 안 내리면 많은 피해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거든요."

검찰도 지난달 법원행정처와 함께
선고 직전 이뤄지는 '기습 공탁'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MBC뉴스 김은초입니다.


#형사공탁 #감형 #수단 #집행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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