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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포 미군 폭격 74주년...'목격자 또 있다'

김단비 기자 입력 2024-08-02 10:02:25 수정 2024-08-02 10:05:21 조회수 105

(앵커)
한국전쟁 때 여수에서 발생한 
미군의 민간인 폭격 사건을 
증언해 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70년이 넘는 긴 시간이 흘렀기에
남은 생존자도, 
이를 직접 본 목격자도 손에 꼽는데요.

이야포 추모제 74주년을 맞아
이를 기억하고 있는 새로운 목격자를 
김단비 기자가 만나고 왔습니다.

(기자)
여수 안도가 고향인 박길성 씨.

1950년 8월 3일 이야포 미군 폭격 당시
박 씨는 17살이었습니다.

무려 74년이 흘러
소년은 아흔이 넘는 할아버지가 됐지만
그때의 기억은 또렷합니다.

* 박길성/이야포 사건 목격자
"화물선에 사람을 잔뜩 싣고 와서 총을 맞았는데... 
섬사람들은 놀래서 다 들어가 앉았어요. 
끝난 뒤에 나와서 수습한다고 보니까 많은 시체들이 깔려 있고..."

미군의 폭격은 마을 주민들에게도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밤이면 불조차 함부로 키지 못하고 
조용히, 어둠 속에 숨죽여 있어야 했습니다.

* 박길성/이야포 사건 목격자
"비행기가 순찰 다니니까 불만 있으면 총을 쏘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단련이 돼서 불을 꺼놓고 자고... 
그렇게 어두운 세상을 살았거든요."

살아남은 피난민에게
박 씨는 도움의 손길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 박길성/이야포 사건 목격자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들에 가면서 점심밥을 해서 놔뒀는데 
내가 그걸 불쌍한 애를 갖다가 덜어줬더니만..."

안도에 정착한 피난민에 대한 얘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미군 폭격으로 부모를 잃은 두 자매를
한 안도 주민이 거두어 키웠는데
결혼한 이후 뿔뿔이 흩어져 소식이 끊겼습니다.

* 박길성/이야포 사건 목격자
"지금 어디 살고 있는지 모르지요. 
(이름 기억나요?) 영자라고 그 당시에 불렀는데..."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기에
생존자와 유가족의 억울함을 
더 잘 이해한다는 박 씨.

지금이라도 한국과 미국 모두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 박길성/이야포 사건 목격자
"아무리 억울해도 어디다 항의도 못하고 그러니까 당하고만 있었던 거죠. 
지원국한테 이런 데는 폭격하지 말라고 (했어야 하는데)..."

MBC뉴스 김단비입니다.
 

#한국전쟁 #여수시 #민간인폭격사건 #이야포 #미군폭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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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단비
김단비 rain@ysmbc.co.kr

광양·고흥 일반사회 및 사건사고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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