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한국전쟁 때 여수에서 발생한
미군의 민간인 폭격 사건을
증언해 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70년이 넘는 긴 시간이 흘렀기에
남은 생존자도,
이를 직접 본 목격자도 손에 꼽는데요.
이야포 추모제 74주년을 맞아
이를 기억하고 있는 새로운 목격자를
김단비 기자가 만나고 왔습니다.
(기자)
여수 안도가 고향인 박길성 씨.
1950년 8월 3일 이야포 미군 폭격 당시
박 씨는 17살이었습니다.
무려 74년이 흘러
소년은 아흔이 넘는 할아버지가 됐지만
그때의 기억은 또렷합니다.
* 박길성/이야포 사건 목격자
"화물선에 사람을 잔뜩 싣고 와서 총을 맞았는데...
섬사람들은 놀래서 다 들어가 앉았어요.
끝난 뒤에 나와서 수습한다고 보니까 많은 시체들이 깔려 있고..."
미군의 폭격은 마을 주민들에게도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밤이면 불조차 함부로 키지 못하고
조용히, 어둠 속에 숨죽여 있어야 했습니다.
* 박길성/이야포 사건 목격자
"비행기가 순찰 다니니까 불만 있으면 총을 쏘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단련이 돼서 불을 꺼놓고 자고...
그렇게 어두운 세상을 살았거든요."
살아남은 피난민에게
박 씨는 도움의 손길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 박길성/이야포 사건 목격자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들에 가면서 점심밥을 해서 놔뒀는데
내가 그걸 불쌍한 애를 갖다가 덜어줬더니만..."
안도에 정착한 피난민에 대한 얘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미군 폭격으로 부모를 잃은 두 자매를
한 안도 주민이 거두어 키웠는데
결혼한 이후 뿔뿔이 흩어져 소식이 끊겼습니다.
* 박길성/이야포 사건 목격자
"지금 어디 살고 있는지 모르지요.
(이름 기억나요?) 영자라고 그 당시에 불렀는데..."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기에
생존자와 유가족의 억울함을
더 잘 이해한다는 박 씨.
지금이라도 한국과 미국 모두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 박길성/이야포 사건 목격자
"아무리 억울해도 어디다 항의도 못하고 그러니까 당하고만 있었던 거죠.
지원국한테 이런 데는 폭격하지 말라고 (했어야 하는데)..."
MBC뉴스 김단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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