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과 신청곡
2022년 2월 22일, 시계탑앞.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어렸을 적 볕이 좋은 날이면 엄마는 이불호청을 뜯어 큰 고무 통에 넣고 발로 지근지근 밟아 빨았습니다. 탈탈 털어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래 줄에 널어둔 이불 호청은 해 질 녘이 되면 그리 오랜 시간을 널어두지 않았는데도 청아한 볕에 고들고들 말라있었습니다. 기분 좋은 햇살 향이 나는 이불호청을 걷어 들여 큰 방에 바르게 펼쳐두십니다. 그때까지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마냥이던 제가 드디어 엄마를 도울 때입니다. 이불 호청을 솜에 고정하는 대바늘로 성근 바느질을 하는 엄마 곁에 앉아 바늘귀에 실을 꿰어주는 게 제 일입니다. 돕는다는데 신이 나기도 하면서 길게 실을 꿰면 여러 번 하지 않아도 되겠단 꽤난 맘도 들어 바늘에 길게 늘어진 실을 꿰어 건내면 엄마는 핀잔대신 "이렇게 길게 실을 꿰면 엄마랑 멀리 떨어져 산다. 이 정도 길이면 해외네, 해외."라고 하셨습니다. 실을 조금 짧게 꿰어달란 얘기로만 알아들었지 이 말이 진짜가 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집과는 너무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로 배정되어 기숙사 생활을 한데 이어 대학마저 타 지역, 기숙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성적과 가정형편에 맞춰 선택한 대학, 학과였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낯선 환경에서 적성과 맞지 않는 공부를 하려니 자꾸 고향, 가족, 친구들... 익숙했던 것들만 생각나고 공부에 집중할 수도, 친구들을 사귀지도 못하고 겉돌기만 했습니다. 며칠 동안 한 번도 웃을 일이 없는 일상에서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받은 편지만이 유일한 즐거움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마음마냥 휑하던 겨울의 끝자락도 지나가고 봄이 오는 즈음 친구의 편지를 보다 고등학교 선생님 소식이 궁금해졌습니다. 답이 올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고 단지 안부를 묻고 싶었던 제자의 어설픈 글에 선생님은 꾸준히 답장을 주셨고 선생님의 편지는 가족, 친구들의 서신과 더불어 타지 생활에 적응하게 되기까지의 시간을 견디게 해준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아마도 선생님은 제가 익숙해져간다는 걸 아셨던지 마지막 편지를 끝으로 더 이상 연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선생님의 뜻대로 그 뒤로 연락하지 않았구요. 선생님은 "2022년 2월 22일 ***시계탑 앞에서 만나자." 라는 기약으로 편지의 끝을 맺으셨습니다.
20년이 다 되어가는 약속이 가끔씩 내 상상이 아니었을까 확신이 없어질 때면 선생님의 편지를 꺼내봅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현재를 보내기 힘들어하는 제자에게, 당장 보이지 않더라도 언제가 오게 될 훗날을 그려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약속을 주셨다는 거 이제는 알 것 같아요. 선생님이 제게 보내주셨던 편지속의 약속을 잊어버리셨다고 해도 항상 제 기억 속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한스밴드의 "선생님 사랑해요"로 제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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