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의 희망곡

정오의 희망곡

12시 00분

사연과 신청곡

[밸런타인데이 특집] 22년 전 나의 썸띵

곧 밸런타인데이도 다가오니 특집으로
갑자기 생각난 22년 전 ‘나의 [썸]띵’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일종의 썸회고록이랄까...
언제 시간 여유되실 때 한 번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간 관계상 평어와 존댓말이 섞여 나감을 양해부 탁 드리면서...
때는 바야흐로 군복무 시절 풋풋하다 못해 떫은내가 나던 때...
당시 나는 집이 대구여서 대학교를 대구에서 다니고 있었고,
강릉 공군비행단에서 같이 군복무를 하다 먼저 제대한 부산 출신의 고참을 만나러 휴가 때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라는 생각을 하지만.. 무언가에 이끌리듯 어쨌든 내려갔다. 지금의 내가 무언가에 끌리듯 광주 정오의 희망곡을 듣는 것처럼 말이다.
계절은 목도리를 한 것만 생각이 나서 대략 12월경이 아니었을까 추측을 해본다.
동대구역에서 공중전화로 당시 휴대전화인 PCS로 고참에게 전화를 했었고, 고참은 부산역에서 내리면 몇 시까지 ‘부대’ 앞으로 오라는 말을 남긴다.
부대에서 휴가 나온 내게 또 부대로 오라니! 무엇?! 이 고참 아버지가 직업군인인가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군휴가를 군부대로 가게 되다니...ㅠㅠ
나중에 알고 보니 부대는 부산대학교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었고, 만나고 나서야 부산대학교에 다니며 인근에서 자취하던 고참이 나를 놀려 주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산역으로 가는 무궁화호를 타고 자리에 앉으려 승차권에 적힌 자리 번호로 갔다.
군인 신분이라도 1시간 30분 정도 걸리기에 앉아가야 다리가 안아프지?
그런데 말입니다.
자리에는 누가 이미 앉아있는 것이었지 말입니다! 마주보고 앉는 4인석이었는데, 여고생 4명이 사이좋게 앉아 수다를 재미나게 떨고 있는 것이었다.(교복은 아니었고, 겉보기엔 성인이었지만, 대화 주제가 그러했다.) 다시 승차권과 차량호수를 맞춰봤지만, 역시 내 자리였지 말이다.
두뇌를 광회전시켜 머릿 속으로 여러 가지 상황을 대입해보았다.
(1) 1명에게 제자리리니 비켜달라고 부탁하고 앉아온다. 하지만, 그 4명이 수다 떠는 가운데 1시간30분을 버틸 자신이 없다.
(2) 거기 내자리인데, 그냥 양보할테니 4명이서 앉아서 이야기 재미나게 하며 가시라고 한다. --> 하지만, 당시 실연을 당한 직후인 저는 여자에게 말을 걸 용기가 바닥난 상태였다.
(3) 종착역이 부산이었으므로 중간에 어디 내리지 않을까 생각하고, 앞에 서서 군인정신으로 꿋꿋하게 기다린다.
3번을 고른 나는 1시간 30분동안 꼬박 서서 부산으로 내려온다... 중간에 내리지 않더라... 부산역에서 같이 내린 그녀들은 부산역 2층에서 내려오는 계단에서 내가 이상하다 싶은지 말을 건네온다.
- 그녀 중 한 명 : “ 저기 오빠야~(신현희의 그 오빠야 억양으로) 혹시 저희가 앉은 그 자리 주인이세요? ”
- 나 : “네...ㅠㅠ”
- 그녀들 : “맞제~맞제~까르륵~까르륵~~” (쑥덕거리며 웃는다...)
- 그녀 중 한 명 : “그라마는 좀 비키달라꼬 카지요... 다리 아프구로 계속 서서 오고 그래요.. 다음에 또 만나면 꼭 비키달라 카세요.”
나 : “ 아..네..네네...”
사실 “다음에 또 보려면 연락처를 알아야 안되겠어요? 그래야 자리 비키달라꼬 말하지! 번호 좀 줘보이소!” 라는 멘트가 내 입에서 나오려는 찰나
나는 군인이고, 너는 민간인이야! 나는 성인이고, 너는 고등학생이야! 군인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거지 작업을 거는 것이 아니야! 대학생이 고등학생에게 작업을 걸다니 이건 범죄야!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고 인사하고 각자 갈 길을 가며 저의 1시간 30분간 썸은 여기서 끝이 납니다.
생각해보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봐야 2~3살 정도였을 것인데... 그냥 좋은 오빠동생이라도 할걸...이라는 후회가 잊을만하면 찬바람이 불었던 그 때처럼 찬바람이 부는 이 계절에 항상 찾아옵니다.
 
신청곡은  버스커버스커의 “ 잘할 걸”
아.. 조금만 더 잘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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