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의 희망곡

정오의 희망곡

12시 00분

사연과 신청곡

모든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시는 분들께...

글을 쓰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라디오 사연에서는 절대 읽혀지지 않겠지만... 그래도 쓴 글이니 올려봅니다. ^^;;
모든 반려동물을 키우시는 분들이 함께 읽고 공감해주셨으면 해서 써봤습니다.
지난 6월 9일의 일입니다...
 
 
내가 나고 자란 경북 금남리 우리 부모님 집에는 하얀색 진돗개가 한 마리 산다. 하얀 구름색이어서 ‘구름’이라는 이름이다.
부산에서 아는 지인이 키우기 힘들어져 간곡히 부탁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맡아 데려다 주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반갑게 맞아주셨지만, 생후 1년이 지난 성견에 가까운 상태라 딱히 우리 부모님을 주인으로 쉬이 받아들이지 않는 눈치였다. 개를 좋아하시는 부모님은 그게 마냥 아쉬우셨다. 구름이는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와 같이 속마음은 그러하지 않지만, 겉으로 강한 척 했는지도 모른다. 진돗개라 한 주인만 알아야 한다는 것이 유전자 속에 남아있어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 주인에게서 목줄을 넘겨받은 나는 친구 정도로는 여겨주며 찾아갈 때마다 반가워는 해주었다. 그는 시골개이다. 도시에서 반려동물이라 불리는 시골의 동물들은 시골에서는 자신의 업무가 있다. 개는 경비업무, 고양이는 쥐잡기 등이다.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주인과 어울려 산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반려’동물이 아닌가! 처음엔 도시개로 태어나 그러하지 않았지만, 시골개의 하루는 목줄에 묶여 집을 지키고 해가 뜨면 이른 아침을 먹고, 개밥바라기별을 보며 저녁을 기다린다. 농사일로 바쁘신 아버지와의 산책 따위는 사치였다. 아마 그 녀석도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갈 때마다 산으로 들로 산책을 나갔다. 여기저기 오줌을 싸고, 킁킁 냄새를 맡으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그 흔한 애완견의 애교 한 번 부려주지 않는 자존심이 강한 녀석이었다. 손 한 번, 얼굴 한 번 핥아주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그는 자신의 역할인 경비업무에 최선을 다했다. 어느 새벽에는 농작물 덤불을 태우다 덜 꺼진 잔불을 발견해 맹렬히 짖어 동네의 영웅이 되었다.
또 한번은 아버지 옆을 지나가던 독사를 발견해 다시 맹렬히 짖어 아버지를 위험에서 구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우리 집에서 12년이라는 시간을 같이 보냈다.
그런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부모님집에 들렀던 동생으로부터 들었다...
죽기 전날에 간식도 잘 먹었다고 했는데, 다음 날 엎드려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동생은 자신이 준 간식 때문인가 마음 불편해했지만, 그 때문은 절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가기 전 맛있는 음식 먹여줘서 고맙다고 해줬다. 평소 입버릇처럼 다음에는 꼭 애교 많은 녀석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바라시던 아버지, 사춘기 아들 대하듯 조심스러우셨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뭐 큰 일도 아니다 싶다.
이후 동생은 부모님집 방범용 CCTV에서 캡쳐한 사진 한 장을 보내주었다. 그 사진에는 구름이의 마지막 모습이 있었다. 평생 그를 구속했던 쇠로 된 목줄을 어머니가 풀어주시고, 이제는 자유를 누리라고 나와 산책나가던 길목에 잘 눕혀놓은 모습이었다.. 혹여 뜨거운 햇살이 그를 힘들게 할 까 우산으로 그늘도 만들어주셨다. 무슨 생각을 할까...내가 보고 싶을까? 그 옆으로는 평소 우리집 고양이 가족을 괴롭히던 도둑 고양이가 코웃음을 치며 지나간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얼씬도 못하던 녀석인데... 우리집 고양이 가족과 구름이는 살갑게 친하지는 않았지만, 도둑고양이의 침입을 막아주며 암묵적으로 인정해주는 사이였다.
한 장의 사진일 뿐인데, 그 사진을 보는 순간 그 모든 상황이 그려지면서, 참아오던 슬픔의 둑이 무너졌다.
밤늦게 퇴근해 불 꺼진 거실에서 혼자 훌쩍거리는 내 모습을 보면.. 털 달린 동물이라면 질색하는 아내는 저 양반이 벌써 갱년기가 왔나 절대 이해하지 못하겠지.
별 일도 아닌데... 겨우 개 한 마리 죽었을 뿐인데...
어릴 적부터 기르던 친구 같던 개들과의 이별이 여러 번이었고, 그 때마다 나는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면 덜 아플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왜냐하면 어른들은 잘 울지 않으니까...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오늘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닌가 보다.
반려동물을 잃고 난 후의 이런 감정을 ‘펫로스’증후군이라고 한다.
대개 이런 증상을 앓는 사람들은 이런 감정을 다른 이에게 이야기하면 유별나고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쉽게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앓는다. 그런 다른 사람의 시선이 펫로스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한다. ‘고작 개 한 마리 죽은 걸로 슬퍼하냐고...’말이다.
어떨 때는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이렇게 슬플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부모와의 이별은 성인이 되면서 가정을 독립해 꾸리면서 어느 정도 받아들여질 준비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 비해 반려동물과의 이별은 분리과정이 없고, 만남부터의 시간이 매우 짧기 때문에 더 강하게 지속된다.
어떤 웹툰을 보니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기르던 반려동물이 마중나온다고 한다. 그 때는 말이 통할거라는 기대를 해본다면서...
먼 훗날 내가 죽어 다시 그 녀석을 만난다면 나도 웹툰에서와 같이 그 녀석에게 물어보고 싶다. 넌 나를 어떻게 생각했냐고...
반려동물과 살아가시는 모든 분들은..언젠가 이별을 하시게 되겠지만, 그 슬픔을 숨기지 마시고,  주변 공감하는 분들과 같이 충분히 슬픔을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