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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인터뷰]5.18 의인 이준규 전 목포경찰서장 명예회복 판결. 의미와 과제(윤성식 명예교수/고려대학교 행정학과)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강경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파면당한 고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이
39년 만에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최근 재판부가
5·18 당시 포고령 위반 혐의로 선고유예를 판결 받은
이 서장에 대한 재심청구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한 것인데요,
부조리와 맞서 싸운 숨은 5.18 의인에 대한 평가와 대우가
조금씩 달라지곤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윤성식 명예교수, 연결해서
이번 판결의 의미...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들어봅니다.
/인사/
1. 고 이준규 목포경찰서장과는 어떤 관계이신 건지?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의 사위)
2. 고 이준규 서장이 장인어른이셨는데, 생전 직접 뵙기도 했는지?
(결혼하기 전에 장인어른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생전의 모습을 볼 순 없었음.
하지만 장인어른의 명예회복을 위한 재판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은 정보를 파악하게 됨.)
3. 고 이준규 서장에 대해
가족들, 그리고 주변 지인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4. 5.18 당시 시민들을 위해 어떤 의로운 결정을 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5. 당시 신군부가 고 이준규 서장을
‘외곽저지선 보호 및 자위권 행사 소홀 등 혐의’로 구속·파면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이 혐의를 적용해야 하는 건 오히려 계엄군이었다고?
(이 서장은 93연대 계엄군에 광주 시민군이 진입하는 것을 막아달라고 요청했음.
하지만 계엄군은 광주 시민군의 목포진입을 허용.
광주에서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는 모든 길목은 차단하면서도
목포로 가는 국도만은 열어뒀던 것.)
6. 광주를 원천봉쇄 했던 신군부가
왜 목포로 가는 길목을 열어뒀던 걸까요?
7. 부조리에 맞선 이준규 서장이 39년 만에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그 의미... 어떻게 보시나요.
8. 이준규 서장의 명예 회복과 진실 규명을 위한 앞으로의 계획은?
9. 5.18 직후 고초를 겪은 수많은 의인들이 있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명예회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 사회의 필요한 과제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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