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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MBC 라디오칼럼_20190221_전라도 유학생과 2 8 독립선언_이동순 조선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 기획 김민호
■ 연출 황동현
■ 진행 김두식
■ 이동순 조선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 전라도 유학생과 2 8 독립선언
그날은 아침부터 눈발이 날렸습니다. 오후 들어 폭설로 바뀌었습니다. 36년 만의 대설(大雪)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오전에 독립선언서를 신문사와 주요 인사들에게 발송했습니다. 조선인은 독립을 염원한다는 사실을 선언하고, 민족대회를 소집해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겠으며, 조선에도 민족자결주의를 적용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일본을 향해 영원한 피의 전쟁을 선포한다’고 했습니다. 그날 오후 2시,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는 400여명의 유학생이 모였습니다. 도쿄 경시청과 경찰서의 정·사복 경찰이 출동해 있었습니다. 결의를 다진 학생들은 긴장을 한 채 주먹을 꽉 쥐고 최후의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대표 백관수가 비장한 음성으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일본 경찰은 깜짝 놀라 제지에 나섰습니다. 이내 비장한 환호성과 우렁찬 만세 소리, 선언서 낭독소리가 뒤섞여 장내는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장내의 학생들은 조국의 운명을 생각하면서 통곡하였습니다. 유학생 대표자들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일본 경찰과 난투하던 수많은 학생들도 부상을 입은 채로 눈 쌓인 길을 개와 돼지처럼 끌려갔습니다.
그 날은 1919년 2월 8일이었습니다. 그 날은 일본 도교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조선유학생들이 조선의 독립을 선언한 날, 조선독립의 역사를 쓴 날입니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사실이 숨어 있습니다. 2.8독립선언이 있기까지 비밀리에 거사를 준비한 유학생이 전라도의 유학생들이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특히 최원순과 정광호가 그 불씨를 놓았습니다. “우리의 거족적인 일대 투쟁이 있어야 되며, 이 거족적 운동의 선봉으로 우리 유학생이 나서야 한다.”고 의기투합하고 김안식, 김현준과 조선청년독립단의 대표가 되는 백관수를 찾아가 거사를 준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2·8독립선언의 주역에서 이들의 이름은 거명되고 있지 않습니다. 모든 뒷일을 이들이 감당하기로 한 전략으로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920년 3월 26일 도쿄형무소에서 출감한 뒤 찍은 기념사진 속에는 최원순이 맨 앞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우리는 알았지만 잘 알지 못했던 역사적 사건, 그 중심에 전라도의 유학생들이 있었고, 이후 이 유학생들은 귀국해서 3·1운동에 뛰어들었으며,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습니다. 올해는 일본의 심장인 동경에서 조선의 유학생들이 독립의지를 선포한, 2.8독립선언 100주년의 해입니다. 다가오는 3.1절, 100주년도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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