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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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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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MBC 라디오칼럼_아르키메데스의 목욕탕_박중환 국립중앙박물관 학예관_20190201

■ 방송시간 월요일~금요일 AM 07:50~07:55
■ 기획 김민호
■ 연출 황동현
■ 진행 김두식
■ 박중환 국립중앙박물관 학예관

■ 아르키메데스의 목욕탕

추위에 움츠러든 몸을 풀 겸 동네 목욕탕을 찾았습니다. 물 속에 몸을 담그고 문득 그리스의 물리학자 아르키메데스를 떠올립니다. 새로 만든 왕관이 진짜 순금인지 아닌지 검증하라는 왕의 숙제를 받고 고민하다가 그는 머리를 식히려 목욕탕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넘치는 물을 보고 물질의 비중과 그것을 떠받치는 부력의 관계라는 섬광같은 해법을 발견했습니다. 너무 기뻐서 그는 ‘유레카’를 외치며 목욕탕에서 뛰어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천년 전의 목욕탕을 생각하는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들어온 일행의 등장으로 소란이 시작된 것입니다. 물장난을 치던 아이들이 급기야 냉탕 모서리에 올라서서 다이빙을 시작했습니다. 참다못한 한 아저씨가 소리를 쳐서 아이들을 제지합니다. 그러자 아이들의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돌아봅니다. 그런데 그의 찌푸린 이마에는 자기 아이들을 주눅 들게 만든 데 대한 불만이 잔뜩 배어 있습니다. 그 날 목욕탕의 긴장은 거기서 끝났지만 자칫 우리는 목욕탕 폭력사건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분노 충돌 사건을 접하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인터넷 뉴스의 댓글창을 열면 매일처럼 진보와 보수, 청년과 노년, 호남과 영남, 여자와 남자 등 대립된 집단 사이에 적개심이 넘칩니다. 아파트 층간소음 다툼에서부터, 골목길의 주차시비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모두 분노라는 키워드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해법은 없는 것일까요? 아르키메데스 같은 통찰이 아쉽습니다.

생각하면 사람 사이의 갈등은 좁은 공간에 많이 모여 사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처럼 모여 살게 된 것은 누가 시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갈등을 줄이는 책임과 해법도 명료한 것입니다. 스스로 선택한 부대끼는 생활 속에서 좁은 공간을 혼자 누리려고 분노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리고 싶은 욕망과 함께 사는 데서 지불해야 할 의무 사이에 비중의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이제 곧 설입니다. 많은 만남들이 기다립니다. 배려와 양보라고 하는 황금같은 공감대가 우리 사회의 욕조 안에 튼실히 자리잡고, 물위에 뜬 찌꺼기같은 이기적인 생각들은 흘려보낼 수 있도록 지혜를 모은다면 우리는 무질서와 대립을 줄이고 행복한 명절을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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