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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MBC 라디오칼럼_삶을 알고 싶거든 죽음에게 물어라_지혜학교 김창수 이사장_20181128
■ 기획 김민호
■ 연출 황동현
■ 진행 김두식
■ 지혜학교 김창수 이사장
■ 삶을 알고 싶거든 죽음에게 물어라
인간은 의식이 미래를 향하여 열려있기 때문에 자신의 삶의 좌표를 주로 미래에다 놓고 살아갑니다. 희망이나 꿈 즉,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 새로운 관계 맺음 등에 대한 기대를 미래로부터 찾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의식이 미래의 끝자락에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죽음입니다. 그 지점에서 인간은 죽음에 대한 공포로 거의 자지러질 듯이 놀라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이 채택한 전략은 가급적 자기 죽음을 잊거나 회피하거나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각자의 무의식 안에 죽음에 대한 공포가 도사리고 있음을 언뜻언뜻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래서 죽음은 인간에게 근원적 불안이 됩니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죽는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기보다는 죽음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체계의 붕괴에서 기인합니다. ‘내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에 대한 기존의 종교적, 철학적, 영성적 해석이 설득력을 잃어감에 따라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오늘날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세 가지로 구별해 봅니다. 먼저 죽음을 회피하거나 부정하며 망각으로 대하는 태도를 들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로 쾌락을 추구하거나 이기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죽음을 생명의 멸절로 보기 때문에 오늘만의 쾌락을 중시합니다.
종교적 입장에서 죽음을 대하는 태도도 있는데, 이 입장은 보상론에 기반한 죽음 이해와 은총론에 기반한 죽음 이해로 구별 됩니다. 보상론의 죽음이해는 현실에서 개인이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면 다른 생에서 더 나은 삶을 누리게 된다는 것으로 개인들이 현실을 바르게 살도록 추동할 가능성이 큽니다. 은총론의 경우에는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절대 타자에 의한 구원을 믿기 때문에 주로 현실 도피적, 타개주의적 행태를 유발시킬 개연성이 높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자기 죽음을 명확히 인식하고 죽음과 직접 대면하는 것이 그것인데, 종교나 철학적 지혜, 인류애나 우주애 등 고도의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것이 죽음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며 평안한 죽음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이 입장은 죽음 이후의 삶은 어차피 모르는 것이고 우리가 할 일은 오늘을 제대로 사는데서 생사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죽음은 회피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만나야 할 과제가 됩니다.
우리가 죽음을 묻고 만나야 하는 이유는 죽음이 삶의 가장 큰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마지막 자리인 죽음에다 자신을 놓고 바라보면 본인의 삶이 전체적으로 확연하게 보이게 된다. 거기 마지막 지점에서 인간은 아무렇게나 닥치는 대로 살 것인지 아니면 실존적 삶을 살 것인지를 선택 해야만 합니다. 라고 하이데거는 말합니다. 죽음의 자리에 자신을 놓고 거꾸로 자기 삶을 거슬러서 바라보고 살아야 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절대적 가난 앞에서, 우리는 본연지성(本然之性)에 반하는 욕망이나 탐욕, 망상 등 온갖 불필요한 집착들을 걷어내어 오늘의 삶 자체만으로도 자족할 수 있게 됩니다. 삶의 해답은 죽음 물음과 사유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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