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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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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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MBC 라디오칼럼_양반과 상놈_황풍년 전라도닷컴 편집장_20181113

■ 방송시간 월요일~금요일 AM 07:20~08:57
■ 기획 김민호
■ 연출 황동현
■ 진행 김두식
■ 전라도닷컴 황풍년 편집장

■ 양반과 상놈

전라북도 장수의 권희문 어르신을 만나러 간 날은 아주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어르신은 수 백 년 된 안동 권씨 전통가옥의 주인이자 가문을 잇는 종손이었습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조선 선비의 복식 그대로, 상투 틀어 갓 쓰고 두루마기자락 휘날리며 느릿느릿 걷는 양반이었습니다. 향교의 큰 어른으로 유생들의 귀감이라는 분을 뵈러 가자니 적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혹여 이 분이 출신과 가문을 따지고, 양반과 상놈을 가리고, 삼강오륜을 앞세우며 아직도 조선시대를 살고 계시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고택에 도착해 인사를 드리자 어르신은 손수 홍시 몇 개를 올린 소반을 들고 나오셨습니다. 손님이 오면 주안상을 차려야 한데 여의치 못하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오메, 참말로 영락없이 꼬장꼬장한 조선 양반이겠구나.’ 그렇게 긴장을 하고 한 나절 내내 어르신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서당에 다니던 어릴 적부터 본격적인 글공부를 위해 스승을 찾아다니던 시절, 길에서 만난 왜경의 겁박에도 상투를 자르지 않고 버티던 이야기, 고택에 깃든 이런저런 사연들을 들었습니다.

“어르신! 명문가 후손들은 요즘 세상에도 양반과 상놈을 가리신가요?” “에이 무슨. 양반 상놈이 따로 있가니? 사람 노릇을 하문 양반이제.” 기어이 궁금한 걸 여쭤봤는데, 아주 명쾌한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사람의 귀천이라는 것은 결코 태생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행실로 구분된다는 진리였습니다. 만인이 평등한 개명세상에서 양반과 상놈의 구분이란 오로지 사람다움에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전부 조선식이제만 딱 한 개는 갖추지 못했네.” 환갑 넘은 며느리가 당신을 수발하면서 가장 힘들어하는 게 겉버선 안에 신는 속버선이어서 대신 양말을 신었다며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권희문 어르신과의 만남이 자꾸 떠오릅니다. 성공한 벤처사업가의 엽기적이고 무자비한 폭력장면이 담긴 영상을 보면서도 그랬습니다. 막대한 부를 쌓고 비싼 외제차를 굴리며 수많은 직원을 부린다 한들 어찌 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일제강점기 때 강제 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법정 투쟁에서 전범기업의 편에 선 대형로펌의 변호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족도 없고 정의도 없고, 고통 받는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연민도 없다면, 아무리 유능한 법조인이라 해도 귀한 사람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성공했으나 속내론 천박한 사람들이 많은 이 사회가 못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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