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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MBC 라디오칼럼_가을의 기도_조선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이동순 교수_20181030
■ 기획 김민호
■ 연출 황동현
■ 진행 김두식
■ 조선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이동순 교수
■ 가을의 기도
황금 들판이 넘실대고 단풍 물들어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오래도록 이 아름답고 풍성한 풍경에 취해 있고 싶습니다만 이 가을도 잠시, 조금 있으면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겠지요.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습니다. 많이 가졌다고,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으스대고 싶고, 성취의 희열감에 영원히 취해 있고 싶은 것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아주 잠시 잠깐일 뿐입니다. 이 가을처럼 우리도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가을을 수놓은 꽃들도 단풍들도 부는 바람 앞에 속수무책이듯이, 우리도 정해진 시간 앞에서 속수무책입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자연은 해마다 갖고 버리기를 반복하고, 우리 인간의 삶은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네 인간의 삶이 한번 뿐이니 더욱 잘 살라는 의미라 여겨집니다. 저는 늘 이맘때면 「벼」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와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 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이성부, 「벼」전문, '우리들의 양식' 1974.
우리 광주 대인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시인, 이성부의 시입니다. 들판에 넘실대는 벼는 한 포기 한 포기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하나가 됩니다. 나와 너도 한데 어우러져 우리가 되는 날을 꿈꾼 시인의 마음이 이토록 눈부신 것은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는 전라도 사람들을 일컫기 때문이요, 넉넉한 마음 다 내어준 호국의 땅 전라도가 핍박받은 서러운 역사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지상에 잠시 머물다 갑니다. 이 가을처럼 이웃에게 넉넉한 마음들 내어주고, 더 풍요롭고 아름다운 지상의 시간을 위하여, 비워서 더욱 충만한 가을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 지상의 머무는 우리네 가을을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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