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듣기
광주MBC 라디오칼럼_동의없는 행위는 성폭력이다_전남대학교 한은미 부총장_20180927
■ 기획 김민호
■ 연출 황동현
■ 진행 김두식
■ 전남대학교 한은미 부총장
■ 동의없는 행위는 성폭력이다
트렁크 팬티만 상의를 탈의한 한 남자가 제 앞을 휙 지나갑니다. 함께 있던 여성들이 놀랐지만 잠깐의 해프닝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1분이 채 안되어서 저 머릿속이 하얘지는 상황을 직면하게 됩니다. 남자탈의실에서 삼각 팬티만 입은 남자가 나타나더니 민망한 뒷태를 보이면서 제 앞줄에 섭니다. 이들 나체 수준의 남성들은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그냥 맨몸에 전신 작업복을 입으려고 아예 팬티차림으로 이동하는 것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래도 되는 남성 중심의 직장 문화에 당연시 되어온 현장이었습니다.
여성 금지구역에 들어간 것도 아닙니다. 단지 여성이 소수라는 이유로 여성 직원은 투명인간이어야 하는 한 직장의 모습, 21세기에 묵인할 수 없는 일상이 2018년 9월 오늘도 버젓이 공기업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35년 전, 홍일점으로 공대를 다닐 때는 여성용 화장실이 드물었습니다. 시험기간에도 쉬는 시간 짧은 10분 안에 다른 건물까지 잽싸게 달려갔다 왔었습니다. 당연한 시설임에도 기존 남성용 화장실의 칸을 막아준 것인데도 소수를 위한 시설은 존치 그 자체만으로 고맙기까지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가까운 10년 전, 공대 여학생 비율이 20%를 넘어서면서 여성 엔지니어로의 사회진출을 위해 여수 산단의 공장장들과 간친회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사무직이나 연구소 외엔 여성의 현장근무가 거의 없을 때입니다. 근무여건이 험해서 여성은 어렵다라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회식이 끝나가며 친화력이 높아질 때쯤 솔직한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제는 현장도 컴퓨터 제어 시스템으로 컨트롤하므로 여성 엔지니어들도 현장 근무도 못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잦은 회식문화 때문에 여성은 불편한 존재라는 귀띔입니다. 10년 전, 그땐 그랬었습니다.
다시 당혹스러웠던 그 날로 얘기를 돌리자면 제가 방문한 곳은 철저한 일반인 제한구역입니다. 그러므로 내부 신고나 요구가 아니라면 내일도 모레도 이렇게 이어질 개선되기 어려운 현장입니다. 남성들이 팬티바람으로 활보하는 직장에서 당신의 아내가 당신의 딸이 근무한다면 그냥 적응하라고만 하겠습니까? 작업복 속에 옷을 갖춰 입고서 일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서로 동료로서 존중하는 배려의 마음이 있다면 입고 벗고 한 번 더 하면 되는 쉬운 일입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단 한 명이라도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런 폭력 문화는 멈춰야 합니다. 다수의 여성분야에서 남성이, 그리고 다수의 남성분야에서 여성이 소수라는 이유로 감수해야 하는 것을 더 이상 개인문제로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소수자의 침묵은 동의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