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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MBC 라디오칼럼_작은 결혼식의 꿈_국립중앙박물관 박중환 학예관_20180920
■ 기획 김민호
■ 연출 황동현
■ 진행 김두식
■ 국립중앙박물관 박중환 학예관
■ 작은 결혼식의 꿈
구한말 한국을 방문했던 서양 사람들의 눈에 독특하게 비춰진 한국 사람들의 문화가 있었습니다. 남의 일에 대해 궁금해 하는 집요한 호기심과 동시에 남에게 자기가 어떻게 비춰질지를 걱정하며 꾸미는 쓸데없는 겉치레였습니다. ‘조선사람들의 무한한 호기심과 허영심’이라고 언급한 당시 프랑스 신문의 기사내용입니다. 남의 사생활에 참견하지 않고 남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건 개의치 않는 서구 사람들의 눈에는 무척 독특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100년도 더 지났지만 아직도 그대로인듯 합니다. 지금 한국의 결혼식장에서 벌어지는 풍경은 100년 전 서양에 소개된 조선 사람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한국에서의 결혼식은 훨씬 더 많은 돈이 든다.” 작년 어느 외신 기자의 서울발 기사 제목이었습니다. 평상시에는 1~2만 원짜리 식사를 즐기던 사람들이 결혼식에서 만은 4만 원짜리 심지어 7만 원짜리 뷔페를 먹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축의금을 받아본들 새 출발하는 젊은이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결혼식장 비용들과 비싼 점심값을 빼고 나면 남는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번듯한 곳에서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우리의 허영심을 파고 든 사업자들이 그 돈은 가져갑니다.
최근 한국청소년청책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젊은 사람들 가운데 무려 41퍼센트가 결혼 비용 때문에 결혼 자체를 망설인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집을 마련하고 살림을 장만하는 데 큰 돈을 들여야 하는 데다가 결혼식 비용으로 1000만 원 심지어 몇 천만 원의 돈이 또 들어갑니다.
일자리를 얻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기에 가뜩이나 어려운 시대입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허영심의 산물인 결혼식 비용 정도는 줄여서 젊은이들의 가벼운 출발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날 하루 우리가 값비싼 뷔페 대신 잔치국수 한 그릇을 먹고 축하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이 힘든 삶의 여건을 넘겨주고 나서도 단지 부모 세대의 허영심 때문에 그들의 어깨를 더 무겁게 만드는 것은 가혹한 일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붑니다. 잔치국수 한 그릇을 놓고도 서로 즐거울 수 있는 홀가분한 작은 결혼식의 청첩장을 받아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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