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광주MBC 라디오칼럼

07시 55분

다시듣기

광주MBC 라디오칼럼_혁신 공포_국립중앙박물관 박중환 학예관_20180828

■ 방송시간 월요일~금요일 AM 07:30~08:57
■ 기획 김민호
■ 연출 황동현
■ 진행 김두식
■ 국립중앙박물관 박중환 학예관

■ 혁신 공포

몇 년전 독일의 어느 지방도시를 여행하면서 숲속에 자리잡은 시골 마을길을 걸어보게 되었습니다. 고색창연한 집들이 군데군데 서 있었고 그 사이에 벽돌을 깔아 만든 자동차 도로를 겸한 인도가 있었습니다. 그 벽돌 길은 수십 년전에 만들어졌음에도 완벽하고 깔끔해서 몇 킬로미터를 걸어가도 흔들거리는 보도블록 한 장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안정된 독일 사회의 탄탄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 같은 유럽의 모습에 비하면 우리사회는 늘 바뀌고 변합니다. 유럽에서는 지금도 대문 문고리에 연결된 줄을 당겨 초인종을 울리고 가방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어 문을 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볼 때 비밀번호를 누르거나 지문인식으로 문을 여는 우리 아파트의 모습은 CIA나 FBI가 등장하는 첩보영화를 연상시킬 정도입니다. 없었던 길이 금방 새로 나고, 몇 년 전에 있던 건물이 헐려나가고 새 건물이 들어서고, 행정기관이나 공공시설들의 민원처리 방법이 늘 바뀝니다.

한국은 경제·금융 매체인 블룸버그가 발표한 '2018년 세계 혁신지수'에서 평가대상 50개국 가운데 1위를 차지했습니다. 한국은 '블룸버그 혁신지수'에서 5년 연속 1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자원이 부족한 좁은 국토에서 경쟁력을 유지해 나가는 데 혁신은 필요한 과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쉴틈없이 바뀌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문득 이 바쁜 변화와 혁신의 끝은 어디일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또 혁신이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있는지, 그 과정들은 믿을만한지에 대한 의문도 듭니다.

현기증 나는 우리사회의 혁신 신드롬에 대해 의혹을 갖게 해준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지역 혁신도시의 한 주차장이었습니다. 혁신도시의 인공호수 옆에 만들어진 그 주차장은 만든 지 불과 몇 년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블록 바닥의 지반이 꺼지고 기울어져서 들고 일어난 벽돌들이 자동차 바닥을 긁어대기 일쑤였습니다. 엉성한 기초공사의 토대 위에 이루어지는 혁신의 현재와 미래는 걱정되는 모습입니다.

바꾸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이제 기초공사 하나라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탄탄하게 하는, 수백년을 바라보는 장인의 혼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