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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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24일/ 이화경/ 잘못된 삶이란 없음에 대한 변론


이화경 소설가
- 잘못된 삶이란 없음에 대한 변론


1990년대 중반 강원도에 사는 한 부부가 산부인과 의사를 상대로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습니다.
부부는 아이를 임신하고 양수검사를 받았습니다. 산부인과 의사는 아이가 건강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부부는 기뻤고, 아이를 양육할 꿈에 들떴습니다. 하지만 태어난 아이는 어딘가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진단 결과 다운증후군이 확인되었습니다. 부부는 좌절했습니다. 아이를 잘 키울 자신도 없었습니다. 아이가 건강하다고 말해준 의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부는 자신들이 겪은 정신적 충격과 양육비의 상당액을 배상하라고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도 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습니다. 청구의 요지는 ‘의사인 당신의 실수로 내가 태어났으니 그 손해를 배상하시오’였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다소 충격적인 소송 사건은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이런 소송을 일컬어 ‘잘못된 삶’ 소송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잘못된 삶’이란 무엇인가요? 잘못된 삶이라는 단어가 환기하는 불편하고 씁쓸한 느낌은 비단 저만 갖는 건 아닐 겁니다. 장애나 질병이 있는 삶에는 어려움이 따르기는 하겠지만 불행하거나 가치가 없는 것만은 아니니까요.
장애나 질병, 극도로 빈곤한 가정 형편, 추하다고 평가받는 외모, 부족한 재능을 이유로 잘못된 삶이라는 타이틀을 부여받거나 세상의 법정에서 실격을 선고당한 이들을 위해 변론에 나선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골형성부진으로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아서 검정고시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 중학부와 일반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와 로스쿨을 졸업하고 지금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최근에 출간한 책에서 사회학, 법학, 철학, 인문학, 문학, 사례와 판례들을 자신처럼 실격당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변론에 치열하고 꼼꼼하게 적용했습니다. 그의 목적은 세상에서 사회적 성취를 이룬 장애인들에게 항용 사용하는 극복이니 불굴의 의지니 같은 수식어를 붙이는 것에 강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아무리 낙관적이고 강인한 정신을 가진 장애인이라도 턱이 높은 보도를 건널 수 없고 화장실을 가지 못한다면 삶에 동기부여를 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하루 종일 오줌을 참으면서 희망을 가질 수는 없으며, 오줌을 참을 때 필요한 건 희망이 아니라 화장실이라고 말합니다.
때로는 알싸한 유머가 있는 문장으로, 장애가 있는 몸으로 숱한 난관을 겪은 자 특유의 단단하고 성찰적인 문장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했던 체험이 녹아난 리얼한 문장으로, 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고투하고 공부했던 변호사다운 치밀한 문장으로 그는 인간 실격 혹은 잘못된 삶에 대한 변론을 써나갔습니다. 그가 자신의 장애를 중심에 두고 구축한 서사를 읽으면서 저는 무엇보다 제 자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언제나 좋은 글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의 변론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방법은 아마 책을 많이 사서 주위에 알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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