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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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03일/ 이화경/ 우리동네 문방구


이화경 소설가
- 우리동네 문방구


며칠 전, 저의 동네 문방구점에 가서 딱풀을 샀습니다. 문구점 사장님께 얼마냐고 물으니1,200원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지갑을 꺼내 돈을 드리려고 하자마자, 사장님은 제게 1.100원만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문방구 사장님은 물건의 제값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다못해 물건 값에서 50원이라도 반드시 깎아줍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제값이라는 게 있는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그러다보니 물건을 살 때마다 사장님이 얼마를 깎아주실지 속으로 셈도 해보고 기대도 하게 됩니다.
늘 깎아주면서도 사장님은 수줍어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더 깎아주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돈을 받아서 죄송하다는 표정을 짓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1200원짜리 딱풀을 100원이나 깎아주면 도대체 뭘 남기면서 먹고 사시는 걸까, 약간 오지랖 넓은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문방구점 앞을 지나다보면, 사장님은 문방구점을 여는 아침과 닫는 저녁엔 어김없이 빗자루를 들고 거리를 청소합니다. 365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문방구점을 엽니다. 단 하루도 쉬지 않습니다. 너무도 한결 같은 표정과 값을 깎아주는 장사법과 휴점 없는 상태가 저로서는 기이하다고 여겨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분의 세상은 몇 평 안 되는 협소한 문방구점이 전부일 거라는 생각이 들면 제 마음이 답답해지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저는 저녁 11시가 넘어 귀가를 하다가 문방구 사장님을 보았습니다. 여전히 빗자루를 들고 문방구점 앞의 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쓸어낸 다음, 문을 닫고 길 건너편 편의점을 들어갔습니다. 불빛이 환한 편의점에서 그가 맥주 캔을 바구니에 넣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한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편의점을 나서는 그의 표정을 보았습니다. 약간 쑥스러우면서도 하루의 노동 끝에 얻어낸 달콤하고 평화로운 미소가 그의 둥그런 얼굴에 퍼져가는 게 보였습니다. 어쩐지 제 마음마저 편안해졌습니다.
그분의 표정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집에 돌아와서는 심지어 소설가 풀 오스터의 작품을 다시 찾아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작은 담배 가게 남자가 주인공인 소설을 말이지요. 작은 담배 가게 주인은 매일 아침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똑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는 게 유일한 취미입니다. 그의 작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단골손님 소설가는 모두 똑같은 사진인데 뭐 하러 찍어대느냐며 핀잔을 줍니다. 그때 담배 가게 주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똑같아 보이지만 한 장 한 장 다 다르다네. 밝은 날 아침, 흐린 날 아침, 여름 햇빛, 가을 햇빛, 주말, 평일, 겨울 코트를 입은 사람, 셔츠에 짧은 바지를 입은 사람, 때론 아는 사람, 전혀 모르는 사람,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있고 태양은 매일 다른 각도로 지구를 비추고 있지.’라고 말입니다. 어쩌면 저의 동네 문방구점 사장님도 매일 다른 각도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계시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다른 하루를 만나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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