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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MBC 라디오칼럼_20180629
■ 기획 김민호
■ 연출 황동현
■ 작가 박현주
■ 진행 황동현 PD
■ 이동순 조선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 조운가의 독립운동
근현대 시조의 격을 높인 작가로 최남선과 이병기, 이은상을 꼽습니다만, 여기에 한명을 더 알아야만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 조운입니다. 그는 영광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시인이 되었으며, 해방 후에 서울로 이주한 뒤 월북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이유도 월북에 있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월북했기 때문에 우리가 몰라도 되는 그런 작가는 아닙니다. 그가 시문학사에 남긴 시의 그늘은 깊고, 지역사회에 뿌린 문화의 텃밭은 넓으며, 독립운동사에 남긴 족적이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시인 조운의 가족들 거의 모두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의 큰 형 조병현, 작은 형 조철현, 매부 위계후, 매제 김형모는 삼일만세운동에 참여한 혐의로,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군으로 활동한 혐의로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해방을 보지 못한 채 고문의 후유증으로 요절하였습니다. 시인 조운도 망명한 뒤 독립운동을, 귀국해서는 지역문화운동에 투신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제치하에서 2년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부인 노함풍 역시도 치안유지법위반 혐의로 일제의 감시대상 인물이었습니다. 매제인 소설가 최서해 역시 식민지 조선의 가난한 민중들의 삶을 재현하다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이들 중에서 위계후, 조병현, 조철현은 독립운동의 공적을 인정받아 국가의 공훈을 받았고 대전현충원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고, 매제인 김형모는 상해에서 활동한 기록을 확보할 수 없어 아무런 공적을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최서해 또한 유족 없이 묘지마저 방치되는 수난 속에 있습니다.
남한의 정치지형에서 월북은 독립운동마저도 거론할 수 없는 배제의 논리가 작동, ‘월북자는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바람에 남은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아직도 숨어 살고 있습니다. 조운가를 보면 국가의 정치적 이념이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던 한 가족을 어떻게 사라지게 했는지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독립운동의 명문가로 우당 이회영가와 이육사가를 호명하고 감사와 존경의 예를 갖춥니다. 이제 우리도 좀 늦었지만 독립운동의 명문가인 조운가에 감사와 존경의 예를 갖추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잊지 않고 미래를 여는 실천이고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신채호),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다.”(EH.카)는 말로 역사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듯이, ‘역사 바로 알기’를 제대로 해야 할 것입니다. 조운가의 독립운동은 결코 월북자라는 낙인찍기보다도 먼저 우선해야 할,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할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툼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이라고 읊은 시조 (석류)처럼 붉었던, 그의 민족혼을 생각하고 생각해 보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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