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광주MBC 라디오칼럼

07시 55분

다시듣기

2018년 07월 02일/ 김창수/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김창수 지혜학교 교장
-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학교에 가는 것을 거부하고 4년 반 동안 혼자 놀았습니다. 제가 학교를 거부한 이유는 크게 네 가지였습니다. 먼저, 시간 사용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쉬는 시간에 공을 차다가 종이 울리면 왜 친구들이 교실로 들어가는지, 그렇게 재미있게 놀다가 계속 공을 차지 않고 교실로 몰려가는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동네에서는 재미있는 놀이라면 시간에 구애되지 않고 계속 놀았던 친구들까지도 종소리만 들리면 차던 공을 그대로 두고 교실로 가는 것에 동의가 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는, 학교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제게 중요한 것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저는 동네에서 친구들을 몰고 다니며, 당시 시골 아이들이 하는 놀이들을 하면서 놀았습니다. 말놀이, 연날리기, 쥐불놀이, 자치기, 구술치기, 딱지 따먹기, 수영, 장기 두기 등 재미있는 일이 널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제가 재미있어하고 잘하는 것들을 하나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만 가면 저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무능력자일 뿐이었습니다. 동네 친구들은 마을에서 놀 때와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에 대하여 비교적 잘 맞추는 것 같았는데, 그것이 제게는 아주 어려웠습니다.
세 번째로, 학교가 극도로 싫었던 것은 학급 안의 권력 행사의 문제였습니다. 당시 우리 반 담임선생님은 학급 일을 반장이나 부반장을 통해 처리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반장은 담임이 맡긴 완장을 차고서 자기들의 생각과 기분에 따라 때로는 서슬 푸르게, 간혹은 조금 관용적으로 학급을 쥐락펴락 하였습니다. 떠든다고 이름 적어 선생님에게 이르고 심하면 반장이 친구들 손바닥을 때리기도 하고, 그렇게 학교는 어린 아이들에게마저 권력의 사유화와 남용을 가르치는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학교를 그만둔 것은, 일곱 살 때 동네에서 같이 놀던 친구 ‘용’이의 죽음과 관련해서입니다. 친구의 죽음이 제게 남긴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친구를 상실한 슬픔 그리고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이듬해에 초등학교에 진학했지만 학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슬픔은 어떻게 가라앉히는지, 그리움은 어찌 갈무리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이 학교를 거부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향락적인 문화에 휩쓸려서, 학교 폭력 때문에, 자기 존재 의미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박탈되어서, 성적으로 줄 세우기 때문에 등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저와 같은 아이들이 편안히 쉬고 놀며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고 더불어 그런 힘을 가진 아이들이 자라나는 학교현장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안학교를 만들고 아이들을 성적으로 줄 세우기를 하지 않고 아이들이 지성인으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들이 문제아라는 시선을 거둘 필요가 있습니다.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들 중에는 자존감이 아주 뛰어난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자주적이며 독립적인 아이들이 많습니다. 제 눈에는 사회가 보기에 ‘고장 난 아이들’ 속에서 큰 희망이 보입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