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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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4월 24일/ 박중환/ 강아지의 슬픈 눈

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
- 지난 주말은 모처럼 여유롭게 백화점 구경을 나섰습니다. 나름 즐거웠던 이 시간은 우연히 지나치던 애견코너에서 우울함으로 바뀌었습니다. 그곳에서 마주친 검정색 강아지의 슬픈 듯한 눈빛 때문입니다. 갈색이 감도는 검정색 털을 가진 그 강아지는 유난히 힘 없이 엎드려 있었습니다. 돌돌 말린 털이 재미있어서 나의 기억에 남아 있는 그 강아지는 2주 전에도 거기서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검은 털을 가진 강아지를 유독 싫어하는 이른바 블랙독 신드롬은 사람들의 기호 때문에 생긴 것이지만 검정색 강아지도 똑같이 사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인간과 동물 사이에,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지켜져야 할 배려와 의무도 더 많아졌습니다. 한 유기동물 통계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구조된 유기동물이 10만 마리가 넘었고 그 가운데 2만 마리 정도가 안락사되었습니다. 반려동물 관련 갈등과 사고도 끊이지 않습니다. 한국소비자원은 작년에 1,019건의 반려견 물림사고가 발생해서 그 수치가 4년 사이 두 배로 늘어났다고 발표했습니다. 반려동물을 둘러싼 사람들 사이의 생각의 벽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 개는 안 물어요’ 라는 말입니다. 늘 함께 생활하는 개의 주인이야 걱정할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동물이 다가오는 것 자체가 공포와 혐오가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야생성이 잠복되어 있는 동물이 낯선 환경에서 언제 돌변할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동물들도 우리와 같은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기심이나 차별에서 시작되지 않고 귀찮으면 내다버리는 변덕과 매정으로 흐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검정 강아지이든 하얀 강아지이든 편견없이 사랑해 주시고 한 번 키우겠다고 결정했다면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끝까지 그 생명을 책임져 주어야 합니다. 자기에게는 귀한 강아지가 가끔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까이하기 싫은 대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조심해 준다면 신고포상금제도나 과태료와 같은 살벌한 규제는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종의 동물들과도 소통하고 교감하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이 같은 종의 사람끼리 소통하고 배려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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