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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대물림_황풍년 전라도닷컴 편집장_라디오칼럼_20180219
■ 기획 윤행석
■ 연출 황동현
■ 작가 박현주
■ 2월 19일 월요일
■ 황풍년 전라도닷컴 편집장
■ 아름다운 대물림
◆ 황풍년 전라도닷컴 편집장 - 남도의 겨울 풍경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담양의 대숲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얀 눈에 덮인 푸른 대숲에서 맑은 바람에 실려 온 향기에 젖어 본 사람은 누구나 담양의 매력에 빠져들게 됩니다.
담양의 삶과 문화는 대나무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기후와 토질은 대나무의 생육에 최적이었고 사람들의 섬세하고 매시라운 손재주는 다양한 죽물을 최고의 생필품이자 민예품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지금이야 값싼 외국산이나 플라스틱 용기에 밀려났지만 담양 죽물은 오랫동안 전국을 석권하며 명성을 이어왔지요.
담양사람들의 기질이 대나무의 속성을 닮은 것도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속은 비었으되 곧고 푸른 대나무는 청빈한 선비의 표상이었고, 꺾이지 않는 민중들의 기개였습니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과 구한말 항일 의병도 대숲의 정기를 타고난 담양사람들의 숙명이었습니다.
봉건과 외세에 맞서 피를 흘리며 스러져간 동학농민군의 손에 들린 죽창 또한 의향 담양의 빛나는 전통이요 불의에 항거해온 전라도의 역사였습니다.
대숲에 일렁이는 옛 이야기는 맑은 기상, 서슬 퍼런 기개에 그치지 않습니다.담양사람들의 미풍양속 죽취일에 얽힌 사연은 더욱 각별합니다.
일제가 강제로 폐지할 때까지 무려 1천 여 년간 이어져 왔다는 죽취일은 음력 5월13일 마을 사람들이 함께 대를 심는 날이었습니다.
마을 주변이나 야산에 대를 심은 뒤 한데 어울려 음식을 나누며 놀이를 즐기던 공동체 문화였습니다.
계절상 우기에 죽취일의 풍습이 있었던 까닭이 있습니다.
대나무가 물을 잔뜩 먹어 마치 술에 취한 듯한 상태여서 어미 대에서 새끼 대를 떼어내 옮겨 심어도 아픔과 슬픔을 모르기 때문이랍니다.
생명을 향한 애틋한 인정이 느껴지는 죽취일의 풍습에는 선조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전라도 곳곳 오래된 마을을 다니며 만났던 어르신들의 공통점은 모든 생명을 가여워하는 품성이었습니다.
뜨거운 개숫물도 함부로 마당에 버리지 않고, 가축이 새끼를 낳으면 금줄을 친 뒤 집안 식구들 모두 출입을 삼가며 정성스레 보살핍니다.
집안에 들어온 산짐승, 날짐승은 절대 잡지 않고 자연으로 되돌려 보냅니다. 젖을 떼지 못한 송아지를 외양간에 두고 어미소를 내다팔지 않고, 정히 팔아야 할 형편이면 어미와 새끼를 한 묶음으로 사고팔려고 애를 쓰십니다.
말 못하는 짐승과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물에까지 연민을 가졌으니 사람에게야 오죽하겠습니까.
생명을 귀히 여기는 따뜻한 품성, 연민이야말로 우리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아름다운 대물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 황풍년 편집장은 토종잡지, 전라도닷컴의 편집장 겸 발행인입니다. 또한 전국 지역 출판인들의 모임인 한국 지역 출판 문화잡지원 대표로서 해마다 지역 책들의 한 마당, 한국 지역 도서전을 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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