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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만든 병, 홧병의 치유_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_라디오칼럼_20180201
■ 연출 황동현
■ 작가 박현주
■ 2월 1일 목요일
■ 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
■ 문화가 만든 병, 홧병의 치유
◆ 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 - 한국인들에게서 특별하게 발견되는 스트레스성 정신질환이 있습니다. 화병입니다. 이 화병은 미국정신의학회가 펴낸 『정신장애 통계 편람』에도 등재된 바 있습니다. 여기에는 ‘화병’이라는 한국어 발음을 그대로 영어로 표기했고 이 질환이 한국인들의 문화와 관련된 것 같다는 설명이 붙어있습니다. 화병은 마음속의 분노, 억울하거나 답답한 감정, 속상함 등의 스트레스가 장기간 쌓여 다양한 신체 증상으로 나타납니다. 가부장적 문화 때문에 중년 여성들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에는 여러모로 힘들어진 중년 남성과 취업준비생들에게서도 많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설날과 같이 모두가 즐거워야 할 명절에 가족, 친지의 만남이 서로간의 갈등과 싸움으로 이어지는 소식을 자주 듣습니다. 쌓여있던 불만과 섭섭함이 모처럼 만나는 자리를 통해서 폭발하는 것입니다. 우리 문화가 만들어냈다는 이 병을 보면서 우리에게 무언가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독특한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선 우리가 지나치게 관계에 집착하고 관계 속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던 때문은 아닐까요. 또 남의 시선을 필요 이상으로 의식하는 문화도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를 힘들게 하는 자의식의 감옥에서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건 나 자신 만의 인생 행로와 인생의 그림과 인생의 시간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관계 속에서 특히 가족관계 속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고 가족과 친지들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너무 기대해왔었던 것은 아닌가도 돌아볼 일입니다. 자녀도 어차피 성장하면 부모와 독립된 인간이 되는 것이고 그에 따른 책임과 권리와 인생의 노정을 갖게 됩니다. 늘 도와주고 그리고 늘 기대하고 싶지만 그것이 너무 길어지고 지나치면 서로를 짓누르는 굴레가 될 수 있습니다. 서로가 좀 더 독립적으로 될 수 있는 문화와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은 이 불행한 한국적 정신질환을 줄이는 문화운동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진행자 - 박중환 관장은 전남 지역 유일의 국립 박물관인 국립 나주 박물관의 개관 업무를 총괄했고 현재 지역민들의 역사에 관심을 높이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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