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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_이화경 소설가_라디오칼럼_20171228
■ 기획 윤행석
■ 연출 황동현
■ 작가 박현주
■ 12월 28일 목요일
■ 이화경 소설가
■ 무한도전
◆ 이화경 소설가 - 만나면 좋은 친구를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습니다. 영문 이름을 따서 만든 애칭인 마봉춘으로 불렸던 친구는 말없이 음악만 틀어주었습니다. 컴퓨터 바탕화면이 무한도전일 정도로 친구를 좋아했던 지인은 퇴근 후에 편안하게 맥주타임을 가지면서 무한도전을 봐왔는데 재방에 재방까지 보느라 지쳐간다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항상 빠지지 않고 챙겨보는 무한도전, 라디오스타, 나 혼자 산다 프로그램들이 스페셜로만 채워지니 맥주 맛도 안 난다면서 자신의 품으로 친구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마이크를 빼앗긴 채 스케이트장의 눈을 치우기도 한다는 어떤 친구의 소식도 들려오고, 암에 걸려 투병중이라는 슬픈 말도 들려왔습니다. 친구를 정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날은 쉽사리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13일 마봉춘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서 김장겸 사장의 해임이 가결된 뒤에 친구들이 돌아왔습니다. 무려 72일 만이었습니다.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만나면 좋긴 한데 솔직히 친구에게 언제나 좋은 감정만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4대강에 문제가 생겨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기도 했고, MB의 내곡동 사저 문제며 서울 시장 10.26보궐선거 문제에 대해서도 친구는 때론 왜곡하고 때론 편파적이기도 했습니다. 시의성이나 현실 관련성이 높은 소식보다 선정적이고 개인적이고 인기나 지명도에 치우친 연성 뉴스로 시간을 채우기도 했고, 뒷북치는 속보도 팩트와 중립, 객관성을 명분으로 물타기에 바쁜 것 같아보였습니다. 실망스럽고 속상하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한때 사랑을 제일 많이 받았던 친구가 손가락질을 받기도 하고 욕을 얻어먹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짜 미워해서라기보다는 많은 기대를 했기 때문에 실망도 그만큼 큰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친구가 할 말을 제대로 하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독립적이고 자유롭고 당당하고 공정하게 보도하기 위해 마이크 밖으로 뛰어나와 싸웠던 것을 압니다. 힘들게 싸우는 모습을 응원했던 이유는 친구의 파업을 보면서 언론의 자유가 민주주의와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가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사장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즉 공영언론의 지배구조가 혁신적이고도 민주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과거 문화방송이 뉴스를 통해 저질렀던 과오를 반성하고, 새 저널리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조직시스템 변화를 담은 재건에 힘쓰겠다는 친구의 각오와 다짐을 응원합니다. 혹독한 시련을 겪고 새로운 무한도전의 길에 나선 친구에게 다시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 진행자 - 이화경 작가는 소설 인문 에세이 번역 등 다양한 분야의 글쓰기를 통해 사회와 소통하고 있습니다. 제비꽃 서민 소설상, 현진건 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소설 꾼, 나비를 태우는 가 그리고 인문 에세이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세다 등 다수의 작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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