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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 사회_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_라디오칼럼_20171205
■ 기획 윤행석
■ 연출 황동현
■ 작가 박현주
■ 12월 5일 화요일
■ 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
■ 무관심 사회
◆ 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 - 지난 주말 비 내리는 오후 버스가 시내 번화가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초겨울의 차가운 바람에 플라타너스 잎이 어지러이 떨어지고 갑자기 일어난 돌풍에 상가 앞에 세워둔 광고용 간판 하나가 자동차 도로 안쪽으로 쓰러졌습니다. 그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자동차들이 곡예운전을 하며 위험한 흐름을 연출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치우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우산을 접고 비를 맞으며 자동차도로 안으로 들어와 그 배너를 길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푸른 눈에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벽안의 외국 청년이었습니다.
비를 맞으며 쓰러진 간판을 끌어내던 그 청년의 모습 위에 공동체에 대한 무관심에 익숙해진 우리 사회의 병든 모습이 겹쳐집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모르는 사람의 일이거나 나와 관계된 일이 아니면 옆에서 그리고 옆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못본 척 하고 지나가는 풍토를 만들고 그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 놓으면 보따리를 내 놓으라고 할지도 모르는 노릇입니다.
빗 속에 쓰러진 도로의 장애물을 내가 치우지 않았다거나 외딴 곳에서 고장난 차량 때문에 어쩔 줄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고 해서 나를 처벌할 법은 없습니다. 그것은 관계기관에서 할 일입니다. 하지만 관계기관이 출동할 때까지의 혼란과 불편과 고통은 어려움을 당한 사람뿐 아니라 결국 우리 모두가 지불해야 할 비용입니다. 무엇보다 사람사는 세상 같지 않은 비정함이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것입니다.
한 사회의 집단지성이 잘못가고 있을 때, 그리고 공동체 정신이 병들어 갈 때 그것을 바로잡고 사회적 기풍을 세우는 것은 우선 입법과 학교교육의 몫입니다. 지난 2008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응급환자에게 응급처치를 하다가 본의 아닌 과실로 손해를 입힌 경우 책임을 덜어주는 내용이 반영되었습니다. 이른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법’을 우리도 일부 도입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노르웨이와 같은 서구 국가들처럼 외딴 곳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을 발견했을 때,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응급상황을 목격했을 때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할 의무를 부여하는 입법을 통해서라도 공동체 정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 진행자 - 박중환 관장은 전남 지역 유일의 국립 박물관인 국립 나주 박물관의 개관 업무를 총괄했고 현재 지역민들의 역사에 관심을 높이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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