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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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수 없는 설명문_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_라디오칼럼_20170717

■ 방송시간 월요일 - 금요일 AM 08:53-
■ 기획 윤행석
■ 연출 황동현
■ 작가 박현주
■ 7월 17일 월요일
■ 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

■ 읽을 수 없는 설명문

◆ 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 - 요즈음은 고고학이나 미술사 같은 전문분야에서도 전문용어를 쉽게 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적석총이라거나 횡혈식 석실묘와 같은 난해한 고고학 용어의 뜻을 알 수 없어 답답했던 학생시절 국사시간의 기억을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문식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어 놓아도 역시 어렵다는 반응들이 남아있습니다. 적석총을 돌무지무덤으로 횡혈식 석실묘를 굴식 돌방무덤으로 바꾸어 보아도 역시 어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어려움의 정도와 성격은 좀 달라졌습니다. 무엇보다 뜻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애쓰는 노력 자체가 하나의 의미있는 발걸음이었을 것입니다. 몇 달전 관광지에서 케이블카를 탔을 때의 일입니다. 승객들이 케이블카를 타기위해 줄을 서 있는 곳 벽에 이 케이블카 설치 공사의 내용을 알리는 패널이 붙어 있었습니다. 케이블의 수평거리가 몇 미터라거나 경사거리는 몇 미터이고 고저차는 몇 미터라는 내용들이 씌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설명 내용 가운데에는 여객 삭도라거나 지삭이니 예삭이니 하는 건축 전문용어들이 아무런 해설없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은 건축 전문가나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 만이 아닐 것이므로 결국 이 설명패널은 전달되지 않을 내용을 적어놓은 것으로 느껴집니다. 사실 관광객들이 알고 싶은 것은 케이블카를 타는 시간이 얼마정도인지 얼마나 튼튼하고 안전하게 만들어져 있는지 등을 알려주는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도로의 육교 등에 내건 행정관서의 현수막 안내 문구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습니다. ‘플래카드는 정해진 장소에 게첨합시다.’ 굳이 ‘게첨’이라는 어려운 한문 표현을 쓰지 않아도 쉽게 뜻이 전달될 만 합니다. 언어와 글은 누구를 향해서 쓰여지는가에 따라 그 표현방법과 내용이 달라져야 합니다. 읽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에게 그 뜻이 전달되지 않는 글과 언어는 기능을 상실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어와 문장을 잘못 써서 의사전달이 잘 안되면 자원과 시설의 활용도가 떨어질 수도 있고 사람들은 불편을 겪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살아 움직이고 성장하고 발전해 가야할 오늘의 우리 말이 100년 전의 한문식 표현에 머물러 있거나 퇴보할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 진행자 - 박중환 관장은 전남 지역 유일의 국립 박물관인 국립 나주 박물관의 개관 업무를 총괄했고 현재 지역민들의 역사에 관심을 높이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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