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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간판 큰 울림_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_라디오칼럼_20170622
■ 기획 윤행석
■ 연출 황동현
■ 작가 박현주
■ 6월 22일 목요일
■ 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
■ 작은 간판 큰 울림
◆ 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 - 고려때 사신으로 온 서긍이라는 사람이 쓴 여행기 ≪고려도경≫ 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고려의 왕성에는 광화문에서 부민관에 이르는 긴 행랑이 있는데, 그 행랑 난간의 모든 문에 현액을 달았다. 영통(永通)·광통(廣通)·흥선(興善)·통상(通商) 등 여러 내용의 현액들이 거기에 걸려있다.” 오늘날의 간판과 같은 현액들이 고려 때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서울이나 지방도시의 오래된 동네길을 걷다보면 옛날식의 간판들에서 켜켜이 쌓여있는 시간의 두께를 느낌 때가 있습니다. 요즘에는 글씨 뿐 아니라 그림과 색상과 디자인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울림을 선사하는 간판들이 적지 않습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부호나 상징 그리고 그림들이 언어 이상의 메세지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들은 건물의 크기와 적절한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의 예술품이 되어 도시와 전원의 경관을 꾸며줍니다.
하지만 모든 간판들이 상쾌한 울림을 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건물의 절반 정도를 뒤덮다시피해서 흉물이 되어있는 간판도 있습니다. 신도시의 신축 빌딩 가운데에는 온 건물에 간판들만 덕지덕지 붙어 있어 더 혼란스럽게 만들어놓은 경우도 많습니다. 자신의 가게 이름을 쉽게 발견하고 많이 방문해 주기를 바라는 주인의 마음에서 만들었을 것이지만 이 간판들이 원래의 목적을 잘 이룰 수 있을 것 같아보이지 않습니다.
도심의 도로변이나 농촌의 길가 풍경 등 사람들의 눈길이 닿는 곳은 모두 공공의 공간입니다. 개인 주택의 정원과는 달리 시민들이 누리는 공원이 모두의 공간이 되어야 하듯이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도시건물의 외벽과 농촌의 도로변도 모두의 공간입니다. 시각적인 절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빼앗는 대형 간판들은 그 자체로서 폭력적입니다. 거대한 간판과 사람 키 만큼이나 큰 대형 글씨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이 감상해야 할 전원풍경과 도시의 미관을 가로막고 시민들의 시각적 권리를 방해합니다. 주목받고 싶어서 걸렸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 간판들이 스스로를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크기가 아니라 의미와 디자인과 격조높은 색채감각와 아름다움으로 주목받는 간판들이 우리 주위를 가꾸어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 진행자 - 박중환 관장은 전남 지역 유일의 국립 박물관인 국립 나주 박물관의 개관 업무를 총괄했고 현재 지역민들의 역사에 관심을 높이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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