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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만에 사라진 풍경_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_라디오칼럼_20170616
■ 기획 윤행석
■ 연출 황동현
■ 작가 박현주
■ 6월 16일 금요일
■ 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
■ 백년만에 사라진 풍경
◆ 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 - ‘100년 전의 한국풍경을 찍은 사진집을 보고 책장을 넘깁니다. 허술한 삼베 저고리에 배꼽까지 드러낸 어린 아이가 평화롭게 풀을 뜯는 소 옆에 서서 물끄러미 이쪽을 바라봅니다. 누렁 소는 풀을 뜯으며 느긋한 식사를 즐기고 있습니다. 시골에서 자란 지금의 장년층이라면 어린 시절 단골로 맡아했을 집안일 돕기의 한 풍경입니다. 책장을 넘기려다가 문득 그 풍경이 요즘의 들과 산에서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음을 깨달았습니다. 들에서 풀을 뜯는 소나 염소나 마당을 헤집고 모이를 향해 달려오던 닭들과 집 앞 냇물을 헤엄치던 오리 가족들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요?
가끔 텔레비전에 소개되는 화면에서와 같이 아마 그들은 지금 현대식으로 지어진 축사 속으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요즈음의 축산환경 속에서 그들에게 허락된 공간은 매우 좁아서 그들이 걷고 뛰기에는 너무 부족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몸을 돌릴 수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비육되기도 합니다. 동물들에게 이러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과연 괜찮은 것일까요? 좁은 우리에 갇혀 괴로워하는 육축들의 신음소리가 가득한 땅에서 인간들만 행복하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까요? 성리학에서는 인간이 천성으로 갖고 태어난 네가지 심성 가운데 측은지심이라고 불리우는 마음이 있다고 합니다. 남을 불쌍하게 여겨 괴로워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불쌍하게 여길 대상에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유럽 연합에서는 이미 2012년부터 동물복지전략을 도입해서 산란용 닭을 좁은 닭장 속에서 키우는 것이나 돼지의 스톨사육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축산의 과학화와 효율적인 산업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문제제기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로 들릴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공장식 축산의 열악한 환경은 이미 축산 전염병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습니다. 조류독감이나 구제역이 발생할 때마다 축산업계는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어왔습니다. 반복되는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면서 이러한 집약적 축산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일인지에 대한 의문도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서 인간은 동물의 고기를 먹어야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식탁에 오를 동물들일지라도 살아있는 동안 건강하고 행복한 생존을 누릴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의 측은지심을 다치지 않게 하는 인간 복지의 길이기도 합니다.
◇ 진행자 - 박중환 관장은 전남 지역 유일의 국립 박물관인 국립 나주 박물관의 개관 업무를 총괄했고 현재 지역민들의 역사에 관심을 높이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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