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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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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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맹세_이동순 조선대학교 교수_라디오칼럼_20170518

■ 방송시간 월요일 - 금요일 AM 07:53-
■ 기획 윤행석
■ 연출 황동현
■ 작가 박현주
■ 5월 18일 목요일
■ 이동순 조선대학교 교수

■ 뜨거운 맹세

◆ 이동순 조선대학교 교수 - 그날, 아버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공판장에 가져간 빨간 딸기를 버려두고 놀란 가슴으로 돌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다음날 이른 아침, 할머니는 아침 이슬을 털며 산길을 걸어 광주로 향했습니다. 자취하고 있는 오빠와 동네 아이들을 데리러 교통이 끊긴 광주로 향한 것입니다. 지금은 무등산 옛길이 된 산길을 몰래 숨죽여 걸어서 밤늦게 모두 무사히 시골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뒤로도 라디오에서는 ‘광주에 고정간첩이 내란을 일으켰다’, ‘고정간첩 중에 여자가 있다’는 뉴스가 계속되었습니다. 그 때 저는 초등학교 6학년, 13살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스무 살 어느 날, 숨죽이며 몰래 숨어서 본 광주민중항쟁, 그날의 사진은 충격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사진 속의 사람, 아니 사람이지만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 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밥도 먹을 수 없었고, 물도 마실 수 없었습니다. 계속된 시위의 현장에 나가 최루탄을 온몸에 뒤집어쓰고 숨이 막혀 쓰러질 지경이 되어도 내 안의 분노는 해결되지 않고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열린 국회청문회, 아주 작은 진실이라도 알려진 것에 잠시 숨을 돌리는가 싶었습니다.
또 시간이 흘러 정치적인 해석에 의해 대강 얼버무려진, 처벌처럼 보이는 일련의 움직임과 사면복권 앞에서 망연자실하고 말았습니다. 죄를 지은 자는 처벌을 하고, 사죄하는 자를 용서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의 권력을 나누기에, 정치 셈법에 의해 죄를 묻지도 않고, 처벌하지도 않았습니다.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았는데 화해라는 이름으로 용서하고 만 것입니다. 그 과오는, 오월의 광주민중항쟁을 종북 빨갱이로 몰아가도록 방치했고, 종편채널이 광주의 함성을 북한군, 남파간첩들이 일으킨 폭동이며, 국가를 전복하려는 음모였다는, 이성이 마비된 거짓말을 하도록 일조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처벌받지 않은 범죄자는 “‘5ㆍ18 광주사태 치유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1980년의 그날을 대강 묻으려는 정치논리는 이제 끝내야 합니다. 정치논리가 아니라 법과 원칙에 따라 그날의 진실을 밝혀 엄중한 처벌이 있어야만 우리는 새 역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다시는 국가가 국민의 목숨을 없신 여기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정부처럼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거부하는 사태도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는 정말, 그날의 모든 것을 반드시 밝혀서, 만행을 저지른 자에게 그가 저지른 만행 그대로 돌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날에야 우리는 광주 오월 영령들과 함께 오월정신을 계승할 자격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광주민중항쟁의 그날인 오늘, 우리는 그날처럼, 그때처럼, 도청 앞 분수대에 올라 횃불을 높이 들고, 그날의 순결함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릅시다. 온전한 우리들의 새날을 위해서 말입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 진행자 - 이동순 교수는 조태일의 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저서로는 움직이는 시와 상상력, 광주 전남의 숨은 작가들이 있으며 우리 지역의 문학의 원형을 발굴 복원해 문학적 위상을 널리 알리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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