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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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세월호에서 온다_이동순 조선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_라디오칼럼_20170403

■ 방송시간 월요일 - 금요일 AM 07:53-
■ 기획 윤행석
■ 연출 황동현
■ 작가 박현주
■ 4월 3일 월요일
■ 이동순 조선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 봄은 세월호에서 온다

◆ 이동순 조선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 그날 이후, 입에서 떨어질 줄 몰랐던 수다, 시끌벅적했던 교실과 운동장, 흐드러지게 피어 교문을 향기로 채웠던 재잘거림도 옛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죄인처럼 침묵해야 했고, 아픈 마음을 드러낼 수 없어 고개를 숙어야 했습니다. 지난 3년간 세월호를 바라보는 시선들은 차갑고도 매몰찼습니다. 진도 팽목항에서 서울까지 유가족들의 오체투지도, 진실을 알고 싶다는 눈물과 절규도 나 몰라라 외면했습니다. 진실을 담고자 했던 영화 「다이빙벨」과 홍성담의 그림 「세월오월」마저도 밑도 끝도 없는 종북의 색깔을 입혀 매도하였습니다. 그래서 유가족들과 미수습자 가족들은 세월호가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섬, 동거차도에 천막을 치고 하루도 빠짐없이 바다의 움직임을 동영상으로 사진으로 기록해왔습니다. 언론이 해야 할 일을 유가족들과 미수습자의 가족들이 수행해온 것입니다. 그들을 정부와 싸워야했고, 차가운 시선과 싸워야했고, 진실을 숨기려는 이들과 싸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겐 슬퍼도 슬퍼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슬픔을 위로 받지도 못했습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세월호의 아이들을 기억합니다. 가족들의 피눈물을 기억합니다. 가족들의 외로운 싸움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기억합니다. 진실을 외면하는데 앞장선 언론들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압니다. 정권의 앞잡이였고, 나팔수였던 언론의 실체를 압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탄핵되고, 세월호가 수면위로 올라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돌변하여 가족들의 목소리를 담기에 바쁜 척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차가웠던 그들의 시선과 매몰찬 외면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세월호의 참극은 타자를 인정하지 않은 뻔뻔함과 남의 탓하기에 바쁜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입니다. 사람보다, 생명의 존귀함보다는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우리들의 생낯바닥입니다. 우리들이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보여줍니다. 이제는 일그러진 자화상 앞에 서서 생낯바닥을 쳐다보며 우리들의 폭력성과 마주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진실을 감추려는 자보다 진실을 말하기에 주저함이 없는 우리가, 언론이 될 것입니다. 그래야만 오늘의 슬픔과 비통이 없을 것입니다. 차가운 바다 속에서 마지막까지 친구들과 손 붙잡고 서로 껴안으며 숨져간 저 어린 꽃들의 마음, 친구들에게 구명조끼를 기꺼이 내어준 따뜻한 그 손길이 될 것입니다.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꽃들이 더욱 슬픈 4월입니다. 친구들 손잡고 다시 봄맞이 갈 때까지 꽃이여, 아직은 피지 마라. 친구들과 다시 만나 꽃노래 부르는 그날까지, 눈물을 닦아 주는 따뜻한 손길들로 넘쳐날 때까지, 꽃이여, 아직은 피지 마시라. 꽃이여, 아직은 피지 마시라.




◇ 진행자 - 이동순 교수는 조태일의 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저서로는 움직이는 시와 상상력, 광주 전남의 숨은 작가들이 있으며 우리 지역의 문학의 원형 발굴 복원해 문학적 위상을 알리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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