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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병을 깨뜨리자 _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 _라디오칼럼_20170327
■ 기획 윤행석
■ 연출 황동현
■ 작가 박현주
■ 3월 27일 월요일
■ 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
■ 젖병을 깨뜨리자
◆ 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 - 어린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고비고비 겪게 되는 통과의례들이 있습니다. 흔들거리는 젖니를 빼내는 일이나 밥을 먹어야 하는 이유기에 젖을 떼지 않으려는 아이와 씨름을 하는 일들이 그렇습니다. 어려운 것은 어린 아이가 힘들어 하는 것을 바라보기가 부모로서 가슴아프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언제까지나 우유병을 물고다니려고 하던 무렵 누군가의 조언을 받아서 다소 충격적인 방법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가 보는 앞에서 플라스틱 젖병을 망치로 깨트려서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던 것입니다. 젖병이 깨지는 것을 보고 한동안 목놓아 울며 뒹굴던 아이는 그 시간이 지나고 나자 이제 우유병을 찾지 않게 되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해서 자립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어 사는 캥거루족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일본에서의 조사에 따르면 20대 캥거루족의 상당수는 40대의 중년이 되어도 부모에게 계속 의존하는 중년 캥거루족으로 살아가게 된다고 합니다. 일자리가 부족하고 젊은 사람들의 생활 환경이 척박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렵다고 해서 부모들이 아이들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부모에게 의존해서 살아가려고 하는 자녀 문제에 대한 책임에서 부모 세대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위험의 징후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부터 나타납니다. 요즘 대학의 풍속도 가운데 흥미로운 부분은 대학생 자녀의 학업이나 진로문제로 상담을 하러 오는 부모님들이야기입니다. 지금의 50대나 60대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보기 힘든 풍경이었습니다. 대학생이란 지성인일 뿐 아니라 자신의 일을 독립적으로 해 나가야 하는 성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된 자녀들에 대해서까지 끝 없는 보호에 메달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캥거루족이 성장한 토양이 아니었을까요.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가장 큰 유산은 대신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립적으로 살아나갈 정신과 자세를 기르는 훈련일 것입니다. 지금의 왜곡된 문화를 바꾸지 못하는 것은 교육체제나 사회환경의 문제 이전에 부모 세대 스스로의 자각과 의지의 문제로 보입니다. 안타깝고 눈물이 가슴을 적셔도 깨뜨릴 것은 깨뜨려야 합니다. 젖병을 망치로 깨뜨려야 할 시간, 바로 지금일 수도 있습니다.
◇ 진행자 - 박중환 관장은 전남지역 유일의 국립 박물관인 국립 나주 박물관의 개괄 업무를 총괄했고 현재 지역민들의 역사에 관심을 높이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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