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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부터의 도피_이화경 소설가 _라디오칼럼_20170321
■ 기획 윤행석
■ 연출 황동현
■ 작가 박현주
■ 3월 21일 화요일
■ 이화경 소설가
■ 자유로부터의 도피
◆ 이화경 소설가 - “자유는 근대인에게 독립과 합리성을 부여해주었지만, 또한 근대인을 고립시킴으로써 마침내 그를 불안에 싸인 무력한 존재로 만들었다. 이와 같은 고립은 참을 수 없는 것이므로, 근대인은 자유라는 무거운 짐으로부터 도피하여 새로운 의존과 복종을 찾느냐,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독자성과 개성에 기인된 적극적인 자유의 실현을 위하여 전진해가느냐 하는 양자택일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방금 들려드린 글은 사회심리학자, 정치심리학자, 정신분석학자로 알려진 에리히 프롬의 대표적인 저서인 '자유로부터의 도피'에 나온 것입니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가'가 나온 시점은, 제국주의와 전체주의에 의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이후였습니다. 인간의 합리성과 이성에 대한 맹신이 팽배했었음에도, 파시즘의 야만성을 혹독하게 겪은 미국과 유럽은 무척 혼란스러운 상태였습니다.
에리히 프롬의 진단에 따르면, 자유는 근대인에게 독립성과 합리성을 가져다주었지만, 또 한편으로 자유는 개인을 고립시키고 개인을 불안하게 하기도 합니다. 자유는 근대적 개인이 불안을 감당할 수 있을 때 지켜질 수 있지만, 근대적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자유라는 부담을 피해 의존과 복종으로 되돌아가려는 퇴행의 몸짓을 보여주기도 한 사례를 나치즘 시대를 통해서 에리히 프롬이 보았던 것입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야만성을 낳을 수도 있기에 우리 시대는 자유로부터의 도피하 는 경향이 더 커지느냐 아니면 자유로 인한 근대적 불안과 맞설 수 있는 주체의 등장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진정한 자유를 적극적으로 찾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지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이나 권위주의에 기대게 될 수 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어 청와대에서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간 지 오늘(15일) 세 번째로 맞이한 날입니다. 탄핵이 되기도 전에 어떤 지지자는 박근혜 대통령과 나라를 위해 희생할 할복단을 모집한다는 글을 온라인에 올리면서 회칼과 흰 장갑과 유언장을 준비하라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탄핵 첫날부터는 그녀의 사저 주위엔 지지자들이 모여서 "억지 탄핵" "원천 무효" 등을 외치거나 "박 전 대통령은 죄가 없는데 잘못 탄핵했고, 북쪽에 지령을 받는 것 같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렇듯 자유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피해 버리는 사람들의 복종에 대한 갈망과 권력에의 동경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일종의 자유의 역설이라고 표현한 에리히 프롬은 복종이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일 수는 있겠지만, 복종한 대가는 너무 세다고 경고합니다.
그토록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해왔는데, 왜 인간은 그 열성만큼 자유를 포기하고자 하고, 자유를 찾는 대신 자유로부터 도피하려고 하는 걸까요. 전통적 권위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개인’이 되었건만, 권위에 자진해서 복속시키려 하거나 융합시키려는, 즉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이 아이러니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복잡한 심리 메커니즘을 섬세하고 치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가까스로 얻은 자유와 개인성은 언제든지 탄핵될 수 있을 것 같아 두렵습니다.
◇ 진행자 - 이화경 작가는 소설, 인문 에세이 ,번역 등 다양한 분야의 글쓰기를 통해 사회와 소통하고 있습니다. 제비꽃 서민 소설상, 현진건 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소설 꾼, 나비를 태우는가 그리고 인문 에세이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세다 등 다수의 작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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