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광주MBC 라디오칼럼

07시 55분

다시듣기

진실에 대한 신념_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_라디오칼럼_20170314

■ 방송시간 월요일 - 금요일 AM 07:53-
■ 기획 윤행석
■ 연출 황동현
■ 작가 박현주
■ 3월 14일 화요일
■ 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

■ 진실에 대한 신념

◆ 박중환 국립나주박물관장 - 초상화와 진실의 문제에 대해 쓴 글 가운데에 노산 이은상 선생이 쓴 ‘한 눈 없는 어머니’라는 글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작가의 제자가 돌아가신 자기 어머니의 사진을 가지고 찾아와서 초상화를 부탁을 했었던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한 눈이 없으셨던 그 어머니의 두 눈을 모두 온전하게 그려달라고 부탁했다가 준엄한 질책을 듣게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한 눈없이 세상을 살면서 견뎌야 했을 어머니의 슬픈 눈에 다시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배신이 아니냐는 이야기였습니다.
조선시대에 그려진 초상화들을 보면 그림들이 가지고 있는 사실적 표현기법에 놀랄 때가 있습니다. 한 예로 순조 때 영의정을 지낸 문신 서매수의 초상화를 보면 얼굴에 드리워지는 그림자의 명암까지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콧잔등과 양쪽 눈 아래 부분을 중심으로 얼굴 전체에 심하게 남아있는 수두자국을 그렸는데 수두자국의 위치와 크기 등이 서로 다르게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사실을 바탕으로 그렸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입술 아래쪽의 작은 혹 하나까지 놓치지 않습니다. 보기 흉하다고 느껴졌을 법한 수두자국까지 저렇게 정밀하게 그려넣는 것을 보면 당시 초상화를 그린 사람들의 진실에 대한 집착이 느껴집니다. 불편해도 거짓된 그림을 남길 수 없다는 당시 화가들의 신념이었던 것입니다.
컴퓨터의 그래픽 기능이 발전하면서 이젠 사진조차도 진실을 담보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진을 어느 정도까지 고칠 것인지 어느 정도까지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남길 것인지 사진의 주인공이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진 만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얼굴을 바꾸는 성형이 대유행입니다.
‘한 눈 없는 어머니’ 이야기에서 초상화를 부탁한 사람은 그림에 대한 대가에 대해 말합니다. 상당한 금액의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말입니다. 사회가 산업화되고 물질의 위력이 인간적인 가치들을 압도해도 지켜져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거짓과 진실에 대한 의혹과 논쟁이 세상을 안갯속처럼 만들고 있습니다. 얼굴에 남은 수두자국 한 점, 작은 혹 하나까지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고자 했던 200년전 화가들의 신념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을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 진행자 - 박중환 관장은 전남 지역 유일의 국립 박물관인 국립 나주 박물관의 개관 업무를 총괄했고 현재 지역민들의 역사에 관심을 높이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