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MBC 라디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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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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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아큐_이화경작가_라디오칼럼_20170306

■ 방송시간 월요일 - 금요일 AM 07:53-
■ 기획 윤행석
■ 연출 황동현
■ 작가 박현주
■ 3월 6일 월요일
■ 이화경 소설가

■ 우리시대의 아큐

◆ 이화경 소설가 - 요즈음 신문과 뉴스를 보기가 겁이 납니다. 사람들을 만나면 모두가 불안해하고 두려워합니다. 국가는 무책임하고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빈부 격차, 사회적 격차로 인한 불평등은 날로 심해지다 보니 자신의 불안과 공포를 어디다 풀어야 할지 알지 못해서 나보다 더 약한 자에게 투사하거나 공격하는 사람들에 관한 끔찍한 뉴스가 매일 쏟아집니다.
너무나 무력한데 어디다 기대야 할지, 누구를 찾아가서 해답을 구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나만이라도 어떻게 살아남아야 한다며, 각자도생의 길을 열심히 찾습니다. 인간관계는 이제 힘과 부를 얻기 위한 맹렬한 투쟁으로 변질되었고, 타인은 오직 이용할 대상물일 뿐,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생활은 여지없이 파괴하고 맙니다.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해서 절약하고, 행운이 좀 따라주면 돈도 많이 벌 수도 있다고 기대하고 또 기대하지만 달라진 건 별로 없습니다.
눈앞만 볼 뿐, 전체를 꿰뚫어볼 수 있는 비판적 판단과 통찰력을 가질 시간적 여유조차 없습니다. 심지어는 중국의 소설가 루쉰이 쓴 ‘아큐정전’의 아큐처럼 늘 술에 취해 있거나, 수없이 많은 굴욕을 당하고 살지만 그것을 직시하지 못하고 도리어 이른바 정신승리법이라는 특유의 자기 위안의 방법으로 ‘승리’를 구가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아큐정전’의 주인공 이름인 ‘아큐’에서, ‘아(阿)’는 중국어로 친근감을 주기 위해 성이나 이름 앞에 붙이는 접두어이고, ‘큐(Q)’는 변발한 청나라 사람들의 머리 모양을 상징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상의 흐름에 무지하고, 시대의 변화나 이념을 고민하지 않은 채 부화뇌동하다가 결국 비참하게 희생되는 아큐의 모습은 중화주의에 빠진 당대의 중국 모습을 통렬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아Q형 인간’은 20세기 초의 중국에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비롯한 어디에든 존재할 수 있는 인간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이성적 인간, 굴종형 인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과대망상에 빠진 인간, 언젠가는 주인이라는 강자의 위치에 올라서서 자기 밑에 있는 약자를 압박하리라고 상상하는 노예적 인간, 시류에 휩쓸려 드는 인간, 약자에게만 함부로 대하는 인간 등 저열한 이미지의 인물들을 모두 ‘아Q’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이 점점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계엄령을 선포하라고 반민주주의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단체, ‘박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면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며 내란선동을 하는 승려 등은 이 시대의 아큐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원순 시장은 25일 자신의 SNS에 "자유에는 한계가 있다. 민주주의의 관용에도 한계가 있다. 살인과 테러를 주창하고 내란을 선동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서울시와 저는 이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루쉰의 작품, ‘아큐정전’의 주인공 아큐는 최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주 비극적이었다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 진행자 - 이화경 작가는 소설, 인문 에세이, 번역 등 다양한 분야에 글쓰기를 통해 사회와 소통하고 있습니다. 제비꽃 서민 소설상, 현진건 문학상등을 수상 했으며 소설 꾼, 나비를 태우는가 그리고 인문에세이 다수의 작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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