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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MBC 라디오칼럼_20190510_광주에서 만난 서양신사_박중환 국립중앙박물관 학예관
■ 기획 김민호
■ 연출 황동현
■ 진행 김두식
■ 광주에서 만난 서양신사
■ 박중환 국립중앙박물관 학예관
여행을 위해서 한동안 만에 광천동 고속버스터미널을 찾았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화장실을 비롯한 터미널의 편의시설들을 둘러보다가 몇 군데 벽에 그려놓은 그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그림은 높은 모자와 과장된 콧수염으로 한 눈에 서양의 노신사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누구를 그린 것인지 정확치는 않지만 이 지역 고유의 정서와는 먼 그림입니다.
고속터미널은 그 도시를 찾는 사람들을 처음 맞이하는 곳입니다. 그 곳에서 만나는 그림이나 의장은 그 도시를 상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도시의 관문에 이국땅 노신사의 이미지를 그려놓은 것은 고유문화를 주제로 지역을 홍보할 전략이 없거나 문화기반 자체가 빈약한 것을 보여줍니다. 송정리의 철도역이나 광주공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언필칭 문화수도를 지향하는 예향의 도시에 정작 모두에게 사랑받는 문화 상징은 없는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는 도시 곳곳에 그들이 생활 속에서 함께해 왔던 풍차나 튤립의 도안과 문화상품들이 넘칩니다. 런던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면 영화 브이포 벤데터에 등장하는 가면을 표지그림 삼아 런던의 공연과 전시로 이끄는 홍보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후지산이 위치한 일본의 시즈오카 현에는 어디를 가든 후지산 그림과 사진과 예술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서 그 곳만의 특징이 느껴집니다. 레미제라블의 파리는 치열했던 프랑스 혁명을 문화로 만들어서 팔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에도 무등산이나 영산강 같은 자연이 있고 광주학생독립운동이나 광주민주화운동처럼 역사에 강한 영향을 남긴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부드러우면서 구성지고 애절하게 이어지는 서편제 같은 음악장르와 남도 화단의 흐름도 있습니다. 그러한 역사문화 자원 속에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상징으로 키워낼 캐릭터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산들은 저절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상징이 되지는 않습니다. 상상력이 포함된 창작과 연출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살아 숨쉬는 문화도시가 되기 위해 도시가 창작을 지원하고 문화예술인들이 모여드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역문화를 소재로 영화나 뮤지컬에서의 블록버스터급 문화 창작을 가능케 할 민간 투자의 유치도 긴요합니다. 광주가 광주만의 문화를 자랑하는 경쟁력있는 문화도시가 되기를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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