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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는 깊다 #20- 임방울과 광주송정역

광주MBC SB스페셜
남도는 깊다 제 20편 임방울과 광주송정역

- 송정리에서 태어난 국창 임방울(1905-1961)은 은유의 소리꾼으로 불린다. 일제의 위압이 온 조선을 휩쓸던 시대, 그가 부른 '쑥대머리'는 단순히 춘향의 처량한 처지를 일컫는 직유의 소리가 아니었다.

'쑥대머리 귀신형용(식민지 나라의 귀신같은 내 몰골)/
적막옥방으 찬자리여(암울하고 차가운 세상에서)/
생각난 것은 임뿐이라(바라는 건 조선의 독립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 보고지고(헤아리고 헤아리네 조선 독립의 그날)'

한양 낭군을 그리워하는 봉두난발의 춘향의 사설, 그 이면의 뜻은 간절한 독립의 염원이었다.

1905년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산동(옛 광산군 송정면 도산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세습무계의 무녀였고, 당대의 명창 김창환이 그의 외숙이었다. 어려서부터 굿문화 속에서 자란 그가 소리꾼으로 성장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박재실, 공창식, 유성준을 소리 선생으로, 동편(東便)의 꿋꿋함과 서편(西便)의 가녀림을 겸비한 명창 소리를 들었다. 지금으로 보자면 김광석쯤 될까. 여러 번 들어도 질리지 않는 호소력 짙은 음색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던 국창. 무명의 송정리 촌놈이었던 그는 1929년 경성에서 열린 공연 이후 전국적 명성을 얻는다. 그 때만 해도 '완창 문화'가 아니라 '토막 소리'가 유행하던 때였다. 그의 주특기는 '쑥대머리'였다.

사실 '쑥대머리'는 판소리 춘향가의 한대목으로 널리 불리던 대목이 아니었다. 일부 판소리 유파에는 창본에 들어있지도 않았다고 한다. '쑥대머리'는 임방울이 부르면서 임방울과 한몸이 되다시피했다. 흡사 수많은 가수들이 '이등병의 편지'를 불렀지만 김광석이 부르면서 김광석의 노래가 되듯. 유성기 시대에 120만장의 앨범 판매를 기록한 블록버스터. 레코드사들이 앞다투어 음반을 취입한다.

송정면 태생의 임방울이 경성길에 오를 때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던 송정역은 이제 복합환승센터 건립을 앞둔 교통의 요충이 되었다. 송정리 촌놈이었던 임방울은 조선의 국창이 되어 지금 광주송정역 지하 기념관에서 오가는 길손을 맞이하고 이다. 그를 기리는 판소리 축제(임방울 국악제)가 해년마다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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