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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는깊다 #홍암나철 #단군들

광주MBC SB스페셜
남도는 깊다 제 13편 홍암 나철과 단군들

- 1909년 단군교(대종교)를 중광, 항일독립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한 홍암 나철(1863-1916). 그는 1911년 10월 대종교도들과 만주 일대를 탐색하여 10여 개의 단군묘와 단군 유적을 찾아내, 당시 경남일보 주필이던 위암 장지연(1864-1921)에게 서한을 보낸다. 경남일보는 이듬해 대종교의 만주 일대 단군 유적 발굴 기사를 싣는다.

홍암 나철이 단군들을 찾아 헤맸던 이유는 무엇일까. 동북아시아 일대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겼던 단군 조선(고조선)의 역사를 제대로 조명하는 것이 일제에 맞서 민족 자존을 지키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제는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조선의 역사를 왜곡, 축소시키고 실재했던 단군들을 신화로 둔갑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단군이란 한명의 통치자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대통령이나 왕조시대의 제왕처럼, 제정일치 사회의 통치자를 일컫는 말이고, 고조선의 단군은 왕검 단군부터 고열가 단군까지 모두 47명이 재위했다고 전해진다(물론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분분하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실재 역사에서 신화로 왜곡된 단군의 이야기는 현대까지도 신화쪽에 기울어진 분위기다.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의 이야기쯤으로 치부되는 단군 이야기. 민족의 뿌리를 찾아보겠다고 만주 벌판 헤매이던 홍암 나철과 대종교도들의 순국과 희생이 있었기에 하늘이 열린 날 개천절(開天節)이 생겼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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