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전 오늘 리포트8 - "누가 실제로 지휘했나"

김철원 기자 입력 2013-05-24 20:08:47 수정 2013-05-24 20:08:47 조회수 12


(앵커)

5.18의 여러 풀리지 않는 의혹 중에 계엄군끼리의 오인사격처럼 상식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33년 전 오늘 기획보도 여덟번째 순서, 오늘은 실제로 계엄군을 움직인 세력의 실체룰 알아보겠습니다.

김철원 앵커입니다.

(기자)

33년 전 오늘은 5.18 기간 동안 가장 많은 군인들이 숨진 날입니다.(1980.5.24.토요일. 오후늦게 비(12.6mm). 낮최고기온 26.8도)

송암동에서 11공수 10명, 호남고속도로에서 31사단 3명 등 이날 하루만 13명의 군인들이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시민군과의 총격전이 아닌 계엄군 내 다른 부대 군인들과의 오인사격 과정에서였습니다.

같은 지휘 라인에 있는 군인들끼리 광주라는 좁은 작전지역에서 어떻게 하루에 두차례나 오인 사격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

바로 지휘권 혼란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뷰)송선태/5.18 기념재단 상임이사
"외부에서 투입된 병력인 공수부대라든지 20사단, 그리고 향토사단이라든지 자체병력하고는 다른 통신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지휘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또, 사용한 통신기기도 달랐어요. 예비주파수라든지 호출번호가 다 틀렸어요."

당시 광주지역 계엄군의 지휘권은 현재 장성 상무대의 전신인 전투교육사령부 사령관한테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식 지휘라인에 있지 않은 정호용 특전사령관과 황영시 육군참모차장 등 신군부 실세들이 수시로 광주에 내려와 진압작전에 개입했습니다.

황영시 차장의 경우 탱크를 동원해 시위대를 진압하라고 지시했다가 현지 지휘관의 반발을 사기도 했습니다.

지휘권자의 실탄 통제 명령은 현장 부대에 전달되지 않아 발포명령도 없는 발포가 잇따랐고, 공수부대는 발포를 하거나 양민을 학살하고도 이 사실을 상급부대에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녹취)한부환/서울지검 1차장(1995년 7월 18일 MBC 뉴스데스크)
"심지어는 시위현장 부근에서 구경하기 위해 나타나는 경우에까지 발포가 이루어진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 당시 실탄 및 사격 통제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었음이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런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전두환 신군부가 실질적인 지휘권을 행사했다는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계엄군을 움직인 실제 지휘권자가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것은 5.18의 밝혀지지 않은 여러 의혹을 밝혀낼 수 있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하지만 당시 군인들 중 어느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입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영상취재*편집 강성우
c.g. 오청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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